예수가 가는 곳마다 기적을 보이자 유대 사람들이 구름처럼 그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유대의 기득권자들은 위협을 느끼고 예수를 제거할 궁리를 했다. 유대교 대사제들은 유대 사람들 사이에 급속도로 번져가는 예수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대책을 토의했다. 유대 사람들 대부분이 예수를 따르게 되면 유대교 사제들의 영향력은 형편없이 떨어지게 돼 더이상 지배층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대사제들이 내린 결론은 예수를 죽이는 것이었다. 유대교 대사제들은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예수가 유대인의 왕임을 칭했다고 고발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국가전복 행위나 내란음모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두 종류의 재판에 회부된 셈이었다. 하나는 군중 앞에서 인민재판을 받는 것이요, 또 하나는 로마총독 빌라도의 최종판단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예수가 한참 인기를 끌면서 구세주로 인정받을 때는 열렬한 지지를 보내던 군중이 이번에는 피고로 그들 앞에 서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쳐됐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유대교 기득권층의 정치공작으로 군중들의 마음이 돌변했던 것이다. 로마총독 빌라도는 군중들의 요구대로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했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의 종교는 유대교다.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지만 예수를 고발한 유대인들은 아직도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는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은 예수의 부활 때문이다. 예수의 부활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은 사도 바울의 행적이다. 사도 바울은 말하자면 기독교도들을 잡아다가 처벌하는 총책임자였다. 이러한 사도 바울은 예수를 만나고 나서 유대교도로서의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 사도 바울은 예수의 부활을 확인했기 때문에 모든것을 버리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험난한 반체제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 입장에서는 배신자였지만 기독교도 입장에서는 확실한 신자였다. 사도 바울은 그 당시 유대교가 지배한 유대 나라에서는 더이상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외방으로 나가서 기독교를 전파했다. 그리스로, 로마로 기독교는 뻗어나갔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단순한 국사범의 죽음이 되지 않고 예수의 부활을 확인하고 예수를 전파한 사도 바울의 노력으로 인류의 죄를 구제하기 위한 대리희생으로 부각되어 영생의 길이 된 것이다. 그래서 세칭 정치범들에게도 밝은 미래가 약속돼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