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건설 및 중소 조선업체들에 대한 본격적인 구조조정 방침을 밝히자 이들 업체에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한 대주단협약이나 패스트트랙의 운용 방향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은 대주단협약과 패스트트랙을 그대로 유지하지만 협약에 가입한 업체를 포함한 모든 건설ㆍ조선회사들의 신용위험을 원점에서 재평가한 후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선별할 계획이다. 김종창 원장은 23일 간담회에서 “기존의 대주단협약과 패스트트랙은 기업을 도와주자는 유동성 지원에 초점이 맞췄지만 내년에는 정리할 기업을 명확히 가려내는 ‘시장 구조조정’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대주단협약 등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과는 별개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얘기다. 대주단협약과 패스트트랙은 경기침체ㆍ환율급변 등으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회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유동성 프로그램은 계속 유지하되 내년부터는 시장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채권단을 중심으로 부실기업을 가려내는 구조조정 작업을 병행해나갈 계획이다. ◇대주단협약에 가입한 건설회사도 퇴출 가능=당국이 원점에서 재평가작업을 거쳐 구조조정 대상기업을 선별하기로 한만큼 대주단협약에 가입한 건설회사라도 구조조정의 칼날을 비껴가기는 어렵게 됐다. 대주단 협약에 가입했다고 해도 금융채무 만기가 무조건 연장되는 것은 아니고 유동성 부족이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주채권은행이 언제든 지원을 중단할 수 있다. 신용위험평가 결과 부실 단계인 D등급으로 판정되면 주채권은행의 판단에 따라 유동성 지원을 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대주단협약은 미분양 적체 등으로 갈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업계의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4월 만들어진 채권은행 간 자율협약이다. 대주단협약에 가입하면 기존 채무를 1년 연장해주고 채권은행별로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자율적으로 신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구조조정보다는 유동성 지원을 위한 것인 만큼 ‘모든 건설회사를 다 살리려고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구조조정을 늦춤으로써 경제 전체에 대한 부담을 키우는 것으로 지적됐다.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서기로 한 것도 이런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기업재무개선지원단의 한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부실기업을 가려내기 위해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데 무게를 둘 것”이라고 말했다. ◇패스트트랙 가입 조선사도 구조조정 대상=중소 조선사는 올 하반기 들어 극심한 불황 속에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다. 금융권은 중기 긴급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인 ‘패스트트랙’를 활용해 이들에게 긴급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부실기업을 솎아내야 조선업 전체를 살릴 수 있다는 게 정부 당국의 판단이다. 금융당국은 대주단협약과 마찬가지로 패스트트랙을 운용할 방침이다. 패스트트랙에 가입한 중소 조선업체라도 수백억원의 시설ㆍ운영자금 등을 채권단에 요구할 경우 정밀실사를 거쳐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선별할 방침이다. 조선업의 경우 신규 설비투자 규모가 기본적으로 수백억원대이기 때문에 부실기업을 하루빨리 솎아내 시장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게 금융당국의 인식이다. 조선회사는 해외 수주에 따른 선수금을 받기 위해서는 은행으로부터 RG(Refund Guaranteeㆍ선박 선수금에 대한 금융기관의 환급보증)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은행권이 조선업 전반에 대한 부실 우려 때문에 일괄적으로 RG 거래를 거부하면서 조선업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업재무개선지원단 관계자는 “패스트트랙이 많아야 수십억원의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이었다면 내년부터는 부실 조선업체들을 솎아내는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