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실세 부회장' 시대 열린다

몸집키운 대기업들 부문별 책임경영 강화…핵심사업 총괄·전권행사 'CEO형' 전면배치<br>신속한 의사결정으로 계열사 시너지 극대화…동양이어 금호아시아나·애경등으로 확산


대우건설이 마침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품에 안긴 지난달 15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본계약 체결식에 박삼구 그룹회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신훈 건설부문 부회장이 계약서에 직접 사인을 한 뒤 “대우건설이 국내 1위를 넘어 세계적 초우량 건설업체로 발전할 수 있도록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재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를 두고 “그룹 60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자 제2의 도약을 상징하는 이 자리에 박 회장이 직접 참석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그룹의 건설부문을 총괄하는 신 부회장에게 부쩍 힘을 실어주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처럼 부회장들이 핵심사업을 총괄하면서 사실상 ‘전권’을 행사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말 그대로 ‘전문경영인(CEO)형 부회장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달 초 단행한 인사에서 화학ㆍ항공ㆍ건설 부문의 책임경영 체제를 새로 도입하면서 박찬법 아시아나항공 부회장을 항공부문 부회장으로, 신훈 금호건설 부회장을 건설 부문 부회장으로 각각 승진시켰다. 이는 기업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급성장하고 있는 외형에 걸 맞는 경영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것으로,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통해 계열사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하겠다는 포석이다. 삼성플라자 인수 등 대대적인 공격경영에 나서고 있는 애경그룹도 지난달 21일 사상 최대규모의 경영진 인사를 단행하면서, 채형석 부회장을 총괄부회장 겸 그룹 최고경영자(CEO)로 임명하고, 18개 계열사를 ▦생활ㆍ항공 ▦화학 ▦유통ㆍ부동산개발 등 3개 부문으로 나눠 부회장급을 전면에 포진시켰다. 그룹측은 “각 부문별 부회장들이 신사업 모델 발굴과 시너지 창출에 역점을 두고 실질적인 책임경영을 맡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동양그룹도 지난 3월 노영인 동양메이저ㆍ시멘트 사장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박중진 동양종합금융증권 부회장을 동양생명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선임, 사상 처음으로 ‘대표이사 부회장 체제’를 출범시켰다. 이 역시 책임경영 강화를 통해 계열사간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한 조치라는 게 그룹측의 배경 설명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외환위기를 전후해 오그라들었던 대기업들이 최근 수년 새 M&A나 신사업ㆍ해외 진출 등을 통해 몸집을 다시 키우면서 인사와 조직 관리 등 질적인 면에서 변화를 추구하는데 따른 것”이라고 풀이한 뒤 “올 연말과 내년 초를 전후해 있을 다른 대기업들의 임원인사에서도 이런 추세가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과거 그룹 총수나 회장을 보좌하면서 무대 뒤 ‘얼굴 마담’이나 ‘가신’의 이미지를 갖고 있던 부회장의 역할이나 위상이 각 사업을 총괄하며 오너를 보필하는 전문경영인형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총수들은 일상적인 경영을 챙기기 보다는 그룹 비전이나 사업의 방향을 제시하고 현안을 해결하는데 주력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올들어 대외여건 악화로 경영이 흔들리자 현대모비스를 자동자부품 전문 회사로 탈바꿈시킨 박정인 부회장을 수석 부회장으로 불러들여 비상경영의 실무 총책임을 맡겼다. 또 홀수와 짝수 달을 나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이른바 ‘셔틀경영’을 해 왔던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최근 9월에 이어 11월에도 한국에 들어오지 않자, 그룹 안팎에서는 “차남인 신동빈 부회장에게 적극적으로 임무를 맡기면서 더 힘을 실어주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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