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계의 사설] 블레어, 승리 그후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 9일자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자신이 이끄는 노동당의 의석 수가 현저히 줄어든 데 대한 비판을 한몸에 받고 있다. 사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영국 지식인들의 이라크 참전에 대한 비난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여당인 노동당과 전체 야당간 의석차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대세를 이뤘다. 총선이 이라크 참전에 대한 국민투표의 장이거나 블레어 총리 개인에 대한 심판이 아님에도 판세는 그렇게 흘러갔다. 영국 보수당 또한 오랜 기간 동안 집권해온 블레어 총리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선거에서 교묘히 이용했다. 마이클 하워드 보수당 대표는 “블레어의 점잔 빼며 웃는 얼굴을 뭉개버리자”고 말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그는 선거활동 기간 동안 ‘세금’보다 ‘블레어’를 더 자주 언급했다고 알려졌다. 선거전의 초점이 이라크전으로 옮겨지면서 논의는 참전 자체보다 블레어 총리의 성향 쪽에 맞춰졌다. 블레어 총리가 영국인들을 이라크 전에 끌어들인 것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총리에게 미국 대통령이 받아야 마땅한 ‘오만한 권력자’라는 칭호를 붙여주기도 했다. 영국 언론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유권자들의 관심을 참전의 정당성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 같은 곳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라크전에 발을 담그고 있는 호주나 덴마크 지도자들처럼 블레어 총리 또한 선거에서 이겼다. 이것이 우리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실제로 이라크 참전에 찬성한 노동당과 보수당이 전체 의석의 70퍼센트를 가져갔다. 게다가 노동당이 이번 선거에서 잃은 의석들이 반전을 외친 자유민주당에 돌아가지도 않았다. 이는 이라크 문제가 이번 선거전의 향방을 좌우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블레어 총리측에서 보자면 이라크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세금이나 공공교육ㆍ의료 등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것보다 오히려 나은 상황이었던 셈이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이라크전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복지 재정 문제 등 다른 현안들에 대해 집중해야 할 때이다. 블레어 총리는 시간이 별로 없다.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아 노동당 승리에 일조했던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이 총리직을 차지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이에 맞서 가까스로 얻은 총리 자리를 지키려면 블레어 총리는 유권자들의 불만을 최대한 잠재우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