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과학입국 다시 불 지피자] <3부> 과학강국 코리아의 조건 6. 글로벌 리딩연구소로 도약하는 KIST

뇌과학 등 융·복합 연구 주력… 기업·대학硏과 차별화<br>6년내 세계 기술 선도할 '플래그십 프로젝트' 추진<br>국책연구소 본연 기능 강화… 글로벌 수준 인프라 구축<br>해외硏과 공동연구 늘려 국제 과학사회 공헌도 높여

KIST가 백화점식 연구에서 벗어나 융복합 전문 연구기관으로 재도약하고 있다. 국가과학자 1호인 신희섭(오른쪽) 박사가 이끄는 신경과학센터의 뇌과학 연구는 KIST의 변화를 추구하는 신규 선도 연구사업 모델로 꼽힌다. /사진제공=KIST


"과학입국 기술자립(科學立國 技術自立)"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역사관 수장고에 보관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다. 전후 폐허를 딛고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던 지난 1976년 당시 '과학으로 나라를 세우고 기술로 경제자립을 하겠다'는 의지가 글자 하나하나에 담겨 있다. 1966년 설립된 KIST는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의 산실이며 상징이다. 지난 45년 동안 KIST는 석ㆍ박사급 과학인재 4,000여명을 길러냈고 컬러TV 수상기, 동복강선 제조기술, 폴리에스테르 필름, 아라미드 펄프 등 기초ㆍ원천과 응용ㆍ개발연구의 조화를 통해 과학기술과 국가성장을 주도해왔다.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맏형'으로 '과학입국 기술자립'이라는 설립목표를 훌륭하게 수행했지만 KIST는 현재 대내외적인 도전을 받고 있다. 안으로는 '백화점식 연구'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고 밖으로는 다른 국가의 국책연구소에 비해 국제 과학사회에 대한 공헌도가 떨어진다는 냉정한 평가를 받는다. 한국에서는 우수할지 몰라도 글로벌 경쟁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융복합 연구로 옛 위상 되찾는다=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KIST는 우리나라 기초과학 대부분의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성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화학연구원ㆍ전자통신연구원ㆍ생명공학연구원ㆍ기계연구원 등 연구기관들이 차례로 분가해 나가면서 지금은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다. 1980년 정부 R&D 예산의 10.8%가 KIST의 몫이었지만 지금은 1.7%에 불과하다.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이나 특허출원, 기술료 수입 등에서도 다른 기초ㆍ산업기술 출연연에 비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2008년 SCI급 논문 수와 특허등록 건수에서 KIST는 기초기술연구회 산하 출연연의 각각 25%와 33%를 차지했지만 개별 연구원 숫자로 평균을 내면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정보기술(IT)나 생명기술(BT) 등 특정 분야에서는 다른 출연연이 더 나은 연구성과를 내고 있다. 대한민국 기초과학의 '온리원(only one)'이던 KIST가 이제는'원오브뎀(one of them)'이 됐다는 얘기다. 2011년 KIST는 뼈아픈 지적을 딛고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연구에서 벗어나 KIST의 강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융복합 연구에 집중할 계획이다. KIST의 다양한 연구 분야와 풍부한 연구인력은 융복합 연구에 좋은 기반이 되고 있다. 문길주 원장은 "올해부터 장기ㆍ대형ㆍ융복합에 기반한 프런티어 연구와 글로벌 어젠다형 연구에 주력할 방침"이라면서 "이를 통해 국책연구소 본연의 기능을 강화하고 대학ㆍ기업과 차별화하겠다"고 강조했다. 10~20년 뒤를 내다보는 '고위험 고수익'형 장기연구와 환경ㆍ고령화 등 글로벌 이슈에 대응해 문제해결형 연구에 집중하겠다는 얘기다. 대학이나 기업과는 차별화된 연구를 위해 KIST의'플래그십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플래그십 프로젝트는 KIST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신규 선도 연구사업 모델로 향후 3년 내 세계 선두권 진입기반을 마련하고 6년 내 세계 선도가 가능한 대형 융복합 분야를 선정, 3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대형 사업이다. 원장이 직접 지휘하는 '프레지던트 이니셔티브 프로젝트' 방식으로 추진된다. 현재 융복합연구본부의 신경과학센터가 주도하는 뇌과학 연구가 후보 프로그램으로 거론된다. 국가과학자 1호인 신희섭 박사가 이끄는 신경과학센터는 뇌 인지기능 및 뇌암 등 뇌 신경질환 치료 연구에서 우수한 연구성과를 쏟아내고 있다. 여기에 인지모델 기반 로봇 연구나 나노바이오 소재 연구 등 ITㆍBTㆍNT를 접목시켜 뇌과학 분야에서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1등을 넘어 글로벌 리딩 연구소로=지난해 KIST의 정규직 연구원 1인당 SCI급 논문은 1.74편. 미국 아르곤연구소(1.07편), 독일 율리히연구소(1.20편),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ㆍ1.14편),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1.21편) 등 여타 국가의 국책연구소보다 오히려 많다. 하지만 논문 건당 피인용도는 2.35편으로 와이즈만(5.13), 아르곤(4.57), RIKEN(4.50), 율리히(3.94)에 크게 뒤진다. 양적으로는 대등한 연구성과를 내놓고 있지만 국제 과학사회에 대한 공헌도 등 질적 측면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KIST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내 출연연과 대학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국가R&D정책이 양적 성장과 당장 급한 추격형 연구 위주로 이뤄지며 국내 출연연들이 세계적 연구기관과의 경쟁에 뒤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KIST는 더 이상 대한민국 최고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바라지 않는다. 글로벌 선도 연구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KIST의 체질을 바꾸고 있다. 플래그십 프로젝트와 함께 KIST 내 전문연구소도 설치, 운영하고 정주여건이나 행정 시스템 개선을 통해 글로벌 수준의 연구 인프라를 구축, 외국인 과학자 유치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또 현재 7% 수준인 국제공동연구 비중을 대폭 확대하고 해외 분원 공동연구실도 늘려나갈 방침이다. 금동화 전 KIST 원장은 "KIST는 국제화를 위한 충분한 외형을 갖추고 있다"며 "지금의 예산과 인력으로 세계적 수준의 연구성과를 내려면 아웃소싱을 과감하게 늘려 역량이 뛰어난 외국기관과의 공동 연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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