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IT

서기 2054년 미국 워싱턴 DC. 최첨단 범죄예방 시스템 덕택에 살인이 사라진다. 예지자들의 환상이 전기자극으로 전환돼 예비살인자와 피살자의 신상은 물론 세부 정황까지 영상으로 투사(投射)되기 때문이다. 경찰국 엘리트로 구성된 범죄예방팀은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범인'들을 체포ㆍ감금, 살인을 막는다. 누구나 한번쯤은 '범죄 없는 세상'을 꿈꾼다. 최근 국내에서 200만 관객을 돌파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모두의 염원인 범죄 없는 세상과 그 이면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공상과학 소설가 필립 K 딕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예지자의 환상이라는 다소 황당한 발상을 모티브로 했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줄거리로 삼고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홍채인식기만 해도 이미 현실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다. 정보기술(IT)은 시쳇말로 눈이 돌아갈 정도로 빠르게 발달, 이제는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상상과 현실을 혼동할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IT 발달에 따라 우리의 생활방식과 거래행태도 많이 바뀌고 있다. 특히 전자금융거래의 확산속도는 대단히 빠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인터넷뱅킹ㆍ텔레뱅킹 등 전자방식 결제는 하루 평균 121만5,300건 5조8,85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건수는 5.1배, 액수는 4.9배가 각각 늘어났다. 증권시장에서도 상반기 온라인증권약정이 1,591조3,000억원으로 전체 약정(3,132조9,000억원)의 50.8%를 차지, 절반을 넘어섰다. 문제는 전자금융거래가 이처럼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킹 등을 통해 남의 돈을 빼돌리거나 불법적인 거래를 하는 것을 막는 장치는 미흡하다는 데 있다. 실제로 얼마 전에는 기관투자가 계좌의 비밀번호를 몰래 빼내 불법으로 250억원대의 주식을 거래한 초대형 금융범죄가 발생해 증시 관계자들을 경악하게 했다. 우리의 사이버테러 대응능력을 보면 이러한 사건이 일어날 개연성이 비단 증권사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보통신부가 지난 21일 31개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사이버테러 대응훈련을 실시한 결과 6차례 '공격'에 단 한번도 공격을 탐지하지 못한 업체가 5곳(16%)에 이르렀고 1~3번 탐지해낸 업체는 11곳(35%), 4~5번은 7곳(23%)이었다. 국제해커들의 공격에는 더욱 취약하다. 우리나라가 정보통신 강국으로 소문나면서 해커들의 주공격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국제해커들에게 해킹당한 시스템은 우리나라가 2,497개(39%) 로 가장 많았으며 미국 801개(12.5%), 중국 413개(6.5%), 타이완 322개(5.0%), 루마니아 285개(4.5%), 인도 242개(3.8%) 등의 순이었다. 보안시스템 강화는 IT와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이번에 일어난 사상 최대의 금융사고를 계기로 보안시스템이 강화되는 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것이 완벽할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이를 어떻게 통제ㆍ활용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최첨단 시설과 관리자의 효과적 통제, 이용자들의 보안협조, 이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보안장치를 가졌더라도 사람들이 이에 걸맞는 의식과 행동양식을 갖추지 않는다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자칫하면 보안장치를 과신해 오히려 대형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도 높다. 첨단 IT 기술로 세워진 영화 속 신도시의 빈민가와 눈알을 판 부랑자의 텅 빈 동공은 '컴퓨토피아'가 인간에 의해 왜곡되면서 '디스토피아'로 바뀌는 과정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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