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적한 연구환경·풍부한 인프라 갖춘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만들고 싶어
애플은 축적된 경험·노하우의 산물
SW 꿈나무들 장밋빛 환상 버리고 장기적 관점서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 분야에서 20년 동안 한 우물을 파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성취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지만 20년은 꿈마저 변하는 시간이다. 세월이 남긴 무게에는 이를 지탱해온 노력과 열정, 그리고 애환과 질곡이 고스란히 담긴다. 그런 면에서 이스트소프트는 국내 정보기술(IT) 업계의 '작은 거인'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천문학적인 수익을 거두거나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만큼 독보적인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이스트소프트의 발걸음은 척박한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에 교과서 같은 존재다. 벤처기업으로 출발해 창업 20주년을 맞은 이스트소프트의 김장중(41ㆍ사진) 대표를 만나 그간의 소회와 새로운 20년을 대비한 청사진을 들어봤다.
김 대표는 올여름 대부분을 제주도에서 보냈다. 휴가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제주도 관광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잠이라도 실컷 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이 수시로 머릿속에 맴돌았다. 지난 21일 문을 연 연구개발(R&D)센터 '이스트소프트 제주캠퍼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공사장을 오가느라 그을린 김 대표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까닭이다.
"미국 IT 산업의 메카인 실리콘밸리가 참 부러웠습니다. 쾌적한 환경에 풍부한 인프라, 그 속에서는 치열하지만 자유로운 연구개발이 가능하지요. 구글이 일하기 좋은 회사로 꼽히는데 이미 그전에 HP를 비롯한 선배 기업들이 많았어요. 누군가가 새로운 문화를 도입하면 자연스럽게 선순환이 되는 구조입니다. 좋은 환경이 주어지면 업무 효율은 당연히 오릅니다.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효율에 좌우되는데 결국 효율은 사람의 기분에 달려 있으니까요."
제주캠퍼스에는 15명의 연구인력이 갓 근무를 시작했다. 장기적으로는 100여명으로 규모를 늘리고 제주도 현지인력도 대폭 확충할 계획이다.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동시에 차세대 먹거리를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제주도의 다양한 지원책 덕분에 국내 기업은 물론 해외 기업과 손잡는 것도 수월하다. 하지만 제주캠퍼스를 열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리도 제주도 같은 곳에 연구소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상상만 했습니다. 막상 시도하자니 비용 문제와 직원들의 거부감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참 많더군요.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본사를 제주도로 옮긴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구상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건설경기가 나빠지면서 공사가 지연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시공사가 부도를 맞았습니다. 원래는 지난해에 다 마무리가 됐어야 했는데 공교롭게도 창립 20주년인 이달에 입주를 마쳤습니다."
김 대표는 중학교부터 창업이 꿈이었다. 어린 시절 애플 컴퓨터를 접하면서 회사를 세워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회사를 키워 부를 쌓는 것도 좋았지만 내가 만든 제품을 사람들이 쓴다는 것에 묘한 희열을 느꼈다. 컴퓨터 게임과 각종 전자기기를 좋아했던 그의 꿈은 한양대 재학 시절 개발한 문서작성 소프트웨어(SW) '한글 워드프로세서 21세기'로 이어졌다.
"대학생이 만든 소프트웨어였기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겉만 보면 기존 제품과 크게 차이가 안 나고 사용법도 비슷했거든요. 가격이 저렴한 것도 이유였습니다. 당시 한글과 컴퓨터의 '아래아한글'이 27만5,000원이었는데 우리는 10분의1인 2만7,500원에 팔았거든요. 내친 김에 회사까지 설립했는데 막상 창업을 하고 나니 제품이 안 팔리더군요. 소비자의 판단은 정확하고 시장은 냉정하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첫 창업의 실패는 예상보다 후유증이 컸다.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개인보증을 섰던 자금이 몽땅 빚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당장 생활고를 겪으면서 대기업의 소프트웨어 용역을 수주해 근근이 생활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환위기까지 닥쳤다.
"고생을 해보니 창업에 대한 욕심이 더욱 생기더군요. 때마침 집집마다 초고속인터넷이 깔리면서 인터넷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SW로 승부를 봐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김 대표는 1999년 동료 3명과 함께 파일 압축 프로그램 '알집'을 내놓았다. 먼저 출시된 제품이 많았음에도 알집은 간편한 사용법과 탁월한 성능을 앞세워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어 '알씨' '알송' '알약' 등을 줄줄이 성공시키며 SW 전문기업으로 도약했다. 2005년에는 게임 시장에도 진출했다. 2011년에는 포털 서비스 '줌닷컴'까지 선보이며 사업 다각화에도 나섰다. 창업 당시 4명이었던 임직원은 어느새 550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위험을 감수하고 먼저 시장에 진출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보다는 이미 기반이 갖춰진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지만 소프트웨어의 특성상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고 설명했다.
"요즘 '카카오톡'과 '라인'이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는데 이스트소프트는 앞서 모바일메신저를 출시했습니다. 너무 일찍 내놓는 바람에 지금은 사내용으로만 활용하고 있는데 아쉬운 부분이지요. 역량과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아 개발 단계에서 무산되거나 먼저 출시하려고 준비하다가 시기를 놓친 제품도 많습니다. 기본 철학은 차분하게 성장하되 완성도 높은 서비스를 내놓는 회사입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자본도 마련했고 인력도 확보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도를 할 계획입니다."
이스트소프트는 그동안 모바일 시장을 꾸준히 준비해온 덕택에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 모바일에 최적화된 백신인 '알약 안드로이드'와 인터넷 검색의 편의성을 높여주는 '스윙 브라우저'가 대표적. 그러나 소프트웨어 꿈나무들이 '장밋빛 환상'을 좇아 모바일게임에 뛰어드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게임을 잘 만드는 친구들이 SW도 잘 만듭니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SW 경쟁력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창조경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벤처기업은 무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십년 동안 경험과 기술이 축적된 덕분에 인력과 자본이 만나면 언제든지 신생업체가 탄생할 수 있는 토양이 있습니다. 애플 '아이폰' 역시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의 산물이고 구글도 야후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김 대표는 요즘 20주년 사사(社史) 편찬을 준비 중이다. 창업 이후 우직하게 앞만 보고 달려왔기에 이제 겨우 걸어온 길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숙원사업이었던 제주캠퍼스를 무사히 마무리 짓고 사업도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섰지만 "대한민국 IT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기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현재 이스트소프트의 외형을 보면 '더 잘할 걸'이라는 아쉬움도 많지만 인력 구성을 보면 비교적 잘해왔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스트소프트에서 근무하다 다른 곳으로 이직한 직원들이 새 일터에서 실력을 발휘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참 보람이 큽니다. 그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사람들이 이스트소프트의 제품을 칭찬해주고 좋아할 때입니다."
● 김장중 대표는 |
개방형 포털 줌닷컴으로 네이버에 도전장 이지성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