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산으로 가는 배


우리 말에서 '산으로 가는 배'는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영어권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 '주방장이 많으면 요리를 망친다'는 경구다. 다만 '산으로 가는 배'에 직접적으로 해당되지는 않는다. 의도하지 않거나 그릇된 결과를 '산으로 가는 배'로 표현하는 것은 동양적 인식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서양에서 이런 식의 표현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끝에 다다른 육지가 고원이다. 산으로 가는 배는 실제로도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원양항로를 단축하기 위해 아테네와 펠로폰네소스 반도 사이에 7㎞안팎의 운하 건설을 추진했으나 암반층을 뚫기가 어려웠다. 결국 이들은 기원전 6세기에 운하 대신 경사도가 낮은 코스를 골라 돌길을 깔고 홈을 파 배를 수레에 얹어 이쪽 바다에서 저쪽 바다로 넘겼다. 디올코스(Diolkos)라는 이름이 붙어진 인공돌길은 900년 이상 사용됐다. 철도의 조상으로도 꼽히는 디올코스가 있던 자리에는 1893년 코린트 운하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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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제국의 멸망에도 '산으로 넘어온 배'가 한몫 거들었다.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던 오스만 투르크는 항구 입구의 거대한 쇠사슬에 방해 받아 함대의 진입이 불가능해지자 언덕 2㎞구간에 기름을 잔뜩 먹인 나무도로를 깔아 70여척의 전함을 산으로 올린 끝에 천혜의 방어선인 황금곶 내부로 침투할 수 있었다. 측면 보급선이 끊어지고 전선 확대를 강요 받은 콘스탄티노플은 결국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8일 열린 세미나에서 '레일 운하'기술을 제시했다. 운하 대신 철로를 깔아 배를 실어 옮기자는 아이디어다. 경사도가 심하지 않다면 산악지형이라도 갑문을 건설할 필요도 없고 소요면적과 건설비도 운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장점이 돋보인다. 제 2파나마 운하 건설이 거론되는 니카라과나 우회 물동량이 많은 말레카 해협 지역이 유력후보지로 꼽혔다. 평행 철로 14개로 파나맥스 플러스급 대형 선박도 산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과연 거대한 선박이 언덕과 구릉을 오가게 될지 참으로 궁금하다. 한국 지형에서는 가능성이 희박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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