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의 선봉장인 구로다 하루히코(사진) 일본은행(BOJ) 총재가 취임 두 달 만에 시장의 요동을 부추기며 아베노믹스를 뒤흔드는 '암초'가 되고 있다. 시장을 안정시키기는커녕 장기국채 금리에 대한 '오락가락' 발언으로 혼란을 일으키고 시장의 불안감에 오히려 휘둘리는 인상을 주면서 일본은행에 대한 신뢰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구로다 총재는 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주최한 '아시아의 미래' 국제교류회의에 참석해 전날부터 크게 출렁이는 시장상황과 관련, "장기금리가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장기금리의 변동성을 억제하기 위해 시장과의 대화와 탄력적인 운용으로 금융시장과 증시 안정을 도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3일 일본 장기국채 금리가 장중 1%를 돌파하고 증시가 7% 이상 급락한 데 이어 24일에도 장중 1,000포인트 이상의 등락폭을 보이며 크게 출렁인 가운데 나온 발언이다. 이날 닛케이225지수는 1만3,981.52에서 1만5,007.50까지 하루 동안 1,000포인트 이상 급등락했다. 하지만 극심한 시장불안을 수습하려는 구로다 총재의 발언은 오히려 시장의 혼란과 불안을 부추기는 요인이 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22일 구로다 총재는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장기 국채금리 상승세에 대한 질문에 "금융완화가 금리인하 압력을 가하기 때문에 장기금리가 뛰어오를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일본은행이 장기금리 상승억제를 목표로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뒤이어 "장기금리는 경기에 대한 기대에 크게 좌우된다"며 "경기회복과 물가상승 기대가 커지면 금리가 오를 수 있다"고 금세 말을 바꿨다.
통화당국 수장에게서 나온 상반된 발언은 일본은행의 정책 대응력에 대한 불신감을 낳으면서 23일 일본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요인이 됐다. 당장 시장의 우려를 가라앉히기 위해 내뱉은 말이 아베노믹스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감을 증폭시킨 꼴이 된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23일(현지시간) 시장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구로다 총재가 시장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일본은행이 시장 변동성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팬마르코어드바이저의 오쿠보 다쿠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처럼 상반되는 발언은 구로다 스스로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구로다 총재가 장기금리 안정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는 데 대해서도 시장의 불신이 쌓이기 시작했다. 24일 오전 내내 강한 반등세를 보이던 닛케이지수는 이날 낮 구로다 총재의 강연이 끝난 직후부터 하락세로 돌아서는 등 요동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는 구로다 총재가 "장기금리 안정이 바람직하다"는 원론적 발언만 반복하며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매도세를 촉발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구로다 리스크'의 근원은 물가상승과 금리하락이라는 구로다 총재의 상충되는 정책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물가상승과 국채금리 억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구로다 총재의 정책목표에 대한 회의적 반응이 속출하고 있다. 소시에테제네랄증권의 시마모토 고지 분석가는 "인플레이션 정책으로 장기국채가 연내 1.4%까지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의 로쿠샤 하루미 채권전략가는 일본은행이 2년 뒤 2%의 물가상승률을 목표로 하는 상황에서 "장래의 물가를 반영하는 장기금리를 억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무라리서치센터의 리처드 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앞서 대규모 양적완화가 시장의 변동성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던 구로다 총재의 기자회견 발언에 대해 "일본은행이 양적완화의 부작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