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그린스펀의 열정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다. 하지만 이 직함은 오늘까지다. 내일부터는 경영컨설팅 회사 대표다. 워싱턴에 경제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그린스펀 어소시에이츠’라는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 올해 나이 80세. 우리 나이로는 81세다. 보통 사람 같으면 벌써 은퇴하고도 남았을 나이에 그는 새 일을 시작한다. 사실 그에게 컨설팅업이 낯선 분야는 아니다. 백악관 경제보좌관과 FRB 의장으로서 정부에서 일한 기간을 뺀 나머지 사회생활의 대부분인 30여년을 컨설팅업계에 몸담었었다. 어찌 보면 외유를 마치고 본업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특히 그는 이번에 업계로 복귀해 컨설팅 업무만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강연과 저술활동도 병행할 예정이다. 따라서 FRB 의장 시절보다 활동영역이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80세에 새일 시작 '영원한 현역' 그린스펀은 FRB 의장으로 18년간 재임할 때도 왕성한 활동으로 유명했다. 모든 공식행사는 물론 만찬과 칵테일 파티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민주ㆍ공화당의 벽을 뛰어넘어 교류하면서 FRB와 미국 경제를 위해 일했다. 그는 퇴임을 불과 일주일 남겨놓은 상태에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월마트 등 산업자본이 산업은행을 인수하는 일을 막기 위해 의회를 상대로 설득하는 데 마지막 힘을 쏟았다. 웬만하면 후임한테 ‘짐’을 넘길 만한데도 그러질 않았다. 그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FRB 의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물론 퇴임을 앞두고 ‘그린스펀의 그림자’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가 재임 중 만들어낸 번영이 ‘빚잔치’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낮은 금리를 고수해 미국민들이 빚으로 집과 자동차를 사도록 유도해 경기를 부양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가계지출의 상당 부분이 수입품에 몰리면서 무역적자가 커졌다는 것. 실제 미국의 가계부채가 지난해 3ㆍ4분기 말 현재 11조4,000억달러로 사상 최고치에 달하고 무역적자도 연간 7,000억달러를 넘어섰다. 비판론자들은 그린스펀 시대의 경제성장에 대해 ‘그린스펀의 사기’(Greenspan’s Fraud)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을 다 인정한다고 해도 그린스펀이 지난 18년 동안 국제금융위기와 테러ㆍ전쟁 등 각종 악재로부터 세계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끈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그의 일에 대한 열정은 누구도 비난하기 어렵다. 많은 미국인들은 젊었을 때 많은 돈을 벌어 조기에 은퇴하는 ‘꿈’을 꾼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호화 유람선을 타고 여행하는 것을 가장 큰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 그린스펀은 이런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돈과 건강과 시간을 모두 갖고 있다. 재산은 NBC 기자로 활동 중인 부인 안드레아 미첼과 합하면 100억원대는 족히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8학년1반(81세)’이라는 나이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인생을 즐기기에 모자라지 않은 나이다. 아니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그런데도 그린스펀은 다시 일을 선택했다. 그린스펀이 은퇴를 거부하고 다시 일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도 일과 함께 새해 맞이를 100억원이 넘는 재산이 있는데 또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할까. 그럴 수도 있다. 한번 강연에 1억5,000만원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와 있다. 또 그가 책을 쓴다면 틀림없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다. 경제대통령으로서 18년 동안 세계 경제를 주무른 그의 이력으로 볼 때 의심의 여지가 없다. FRB 의장 때보다 수입이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린스펀이 돈을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하기에는 그의 재산과 나이가 너무 많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일을 계속할까. 그를 ‘영원한 현역’으로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굳이 가능한 추측을 한다면 ‘열정’ 때문이 아닐까. 취업ㆍ구직난으로 이태백ㆍ사오정ㆍ오륙도라는 말이 유행하는 우리 현실에 비춰볼 때 그린스펀의 ‘팔자’가 부럽다. 팔순에 회사를 창업한 그의 능력과 편안한 노후를 포기한 일에 대한 열정이 부럽다. 설을 지나 새해가 다시 시작됐다.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끌어안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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