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3월 2일] <1633> 모릴 관세법


31대51. 독립 직후 미국 북부와 남부의 소득격차다. 남부의 우위는 산업화와 서부개척이 진행되며 뒤집혔다. 남북전쟁 직전 소득차이는 100대79. 독립 이후 80여년간 북부가 3.2배 성장하는 동안 남부의 성장은 1.5배에 그쳤다. 왜 그랬을까. 북군에게 처음으로 대포를 발사했다는 에드먼드 루핀의 입을 빌려보자. '북부의 세금이 없었더라면 남부는 두 배는 더 부자가 됐을 것이다.' 루핀이 지적한 '세금'은 관세. 관세는 남부에 수출 농산물 가격경쟁력 저하 요인이자 수입 공산품을 비싸게 사게 만드는 원흉이었다. 오죽하면 '증오의 관세(Tariff of Abominations)라고 불렀을까. 관세에 대한 남부의 불만이 극에 달한 것은 링컨 당선 직후. 가뜩이나 노예해방론자로 알려진 링컨 당선자가 관세인상을 추진하자 남부는 연방을 탈퇴했다. 남부 출신 의원들이 의사당을 떠난 가운데 상하원은 고율관세법을 통과시켰다. 1861년 3월2일자로 효력을 갖게 된 이 법의 골자는 관세의 2~3배 인상. 발의자인 저스틴 모릴 의원의 이름을 따 모릴 관세법으로 불리는 이 법이 발효된 지 한 달 열흘이 지나 남부동맹은 섬터 요새를 공격했다. 모릴 관세법은 남북 간 조세갈등의 정점이자 전쟁의 도화선이었던 셈이다. 모릴 관세법으로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49%까지 치솟았다. 미국은 종전 후에도 1차대전 직전인 1913년까지 고율관세를 유지하며 국내 제조업을 키웠다.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미국의 관세율은 32%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보호무역의 울타리를 유지하기 위해 내전까지 치렀던 과거는 아예 잊어버린 듯 오늘날 미국은 타국에 자유무역을 강요한다. 지붕 위에 올라와 내 사다리를 감추고 남의 사다리는 부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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