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9월29일] 페르미

우주는 페르미로 가득하다. 전자와 양성자ㆍ중성자 등 우주를 구성하는 입자들의 통칭이 ‘페르미 입자(페르미온ㆍFermion)’. 우주에 이름을 남긴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는 원자력시대를 연 개척자다. 1901년 9월29일 이탈리아에서 철도공무원의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페르미는 어려서부터 수학과 라틴어의 신동으로 불렸다. 고교입시 수학답안지로 박사급 실력자라는 찬사를 받고 대학 재학 중에는 교수들을 상대로 양자역학 강의도 맡았다. 25살에는 양자역학과 수학을 접합한 ‘페르미-디렉 통계’를 발표, 세계적인 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로마대학 물리학 교수로 발탁된 페르미는 중성자와 핵분열 연구에 매달려 연쇄 반응이 일어날 물질은 우라늄-235와 풀루토늄-239라는 사실을 규명해냈다. 193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것도 이 덕분이다. 노벨상 수상과 함께 페르미는 미국행을 택했다.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 아래서 유태인인 부인과 두 아이의 안전이 위협받았던 탓이다. 미국 땅에서 페르미는 이론을 현실로 만들었다. 1942년 10월 시카고대학에서 제작한 최초의 원자로는 오늘날 전세계의 전력생산의 6분의1을 차지하는 443개 원자력 발전소의 원형이다. 인류는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인 페르미에게 원자력이라는 새로운 불을 얻은 셈이다. 정작 페르미는 핵의 군사적 사용이 늘자 재앙의 상자를 연 판도라처럼 자신의 연구를 후회하며 1954년 53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졌다. 주목할 대목은 2차대전을 종결한 원자폭탄 개발을 망명 과학자들이 주도했다는 점. 독일 출신의 아인슈타인과 헝가리 태생인 폰 노이만 등이 자기 나라를 등지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요즘도 미국 페르미연구소에는 전세계의 천재 과학자가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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