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인사이트] 성장률 둔화에 출구전략 공포… 이중 덫에 갇힌 신흥국

경기부양 위해 돈 풀자니 자금유출·인플레 초래<br>인도·호주 금리인하 중단<br>저성장 감수하고 금리인상… 브라질·인니 통화가치 급락<br>성장·물가 두 토끼 놓쳐


신흥국가들이 기록적인 저성장과 선진국의 출구전략 공포라는 이중의 덫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채 위기를 키우고 있다. 저성장 탈출을 위해 돈을 풀자니 미국의 출구전략 우려 때문에 가뜩이나 급진전되고 있는 자금 유출을 부추겨 물가 급등을 초래할 수 있고, 금리인상 등으로 외환 유출을 막아 물가를 잡자니 경기가 더 나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일부 국가는 일단 극심한 시장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저성장을 감수하고 자금유출 막기에 나섰지만, 그마저 약발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코너에 몰리고 있다.


◇저성장 위기에도 손발 묶인 신흥국= 가장 깊은 고민에 빠진 곳은 아시아 3위 경제대국인 인도다. 인도의 2012 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 경제성장률은 전년대비 5%로 10년래 가장 저조한 수준에 그친 데 이어 올해도 5%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렇게 성장률이 둔화하면 통상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등 부양책을 펴야 하지만, 지난달 미국의 출구전략 가능성이 제기된 이후 중앙은행은 딜레마에 빠졌다. 외화가 급속도로 유출되고 루피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물가에도 비상이 걸린 것이다. 인도 루피화 가치는 지난주 달러당 58.98루피를 기록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실제 인도 중앙은행은 지난 17일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7.25%로 동결, 경기부양을 위해 3차례 연속으로 실시해 온 금리 인하를 중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출구전략 가능성이 인도 중앙은행의 성장 촉진책에 제약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호주도 경기침체 가능성이 고조되는 와중에 호주달러화 가치가 33개월래 최저 수준으로 급락하는 바람에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호주 중앙은행은 지난달 초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2.75%로 내려 경기 부양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으나, 미국의 출구전략 가능성이 제기되자 이달 초에는 금리를 동결시켰다. 전문가들은 다음달 2일 열릴 통화정책회의에서도 금리가 동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외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역시 1ㆍ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년동기대비 0.9%로 약 4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지만 화폐가치가 4년 래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선뜻 부양에 나설 수 없게 됐다. 태국은 1ㆍ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2.2%를 기록해 5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자 지난달 기준금리를 낮췄으나, 출구전략 우려 때문에 운신에 제약을 받기 시작했다.


◇자금유출 방지책도 약발 안 먹혀…수세 몰린 브라질= 딜레마에 빠진 신흥국들 가운데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등 일부 국가는 저성장을 감수하고 자금유출 방지에 나섰지만, 대책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해 오히려 코너에 몰린 상태다.

관련기사



브라질의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이 2%를 밑돌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지난달 말 기준금리를 8%로 0.5%포인트나 인상한 데 이어 금융거래세(토빈세)를 폐지하고 자국 외환시장에 60억달러를 푸는 등 외환 유출에 적극 대응하고 나섰다. 전문가들은 내달 열리는 통화정책위원회 회의에서도 기준금리가 0.75%포인트 추가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후 달러대비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더 하락, 18일에는 달러당 2.18헤알까지 떨어졌다. 토빈세 폐지 결정 당시의 달러당 2.12헤알보다 오히려 낮아진 수준이다. 저성장을 감수하고 환율을 방어하겠다던 중앙은행의 의도는 아무런 약발을 발휘하지 못한 채, 성장과 물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상황이 나빠지자 브라질은 재정정책으로라도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규모 부양책을 내놓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통화정책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 재정 풀기만으로 경제를 살려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설상가상으로 브라질에서는 21년 만에 최대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발발, 정국마저 불안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1ㆍ4분기 경제성장률이 2년래 최저를 기록했지만 지난 13일 기준금리를 깜짝 인상했다. 하지만 루피아 가치는 18일 장중 한때 달러당 1만 루피아를 기록, 금리 인상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가며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무력화시켰다.

◇취약한 경제기초 집중 조명…투자금 이탈 장기화할 수도= 단기적인 통화가치 급락보다 더 문제는 미국 출구전략 우려에 따른 자금유출 사태로 신흥국 경제의 취약성이 집중조명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경제의 기초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향후 신흥국으로의 투자금 유입이 장기적으로 가로막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도이체방크의 존 폴 스미스 신흥국 투자전략가는 "신흥국의 경제 기초가 매우 취약하다"며 이번 사태로 신흥국 경제 혼란이 장기화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브라질의 경우 최근 1년 평균 물가상승률이 6.5%로 중앙은행이 정한 마지노선과 일치, 꾸준한 물가 상승압력에 시달려 왔다. 최근 HSBC가 집계한 인도의 5월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는 50.1로 50개월 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남아공은 지난달 산업부동산지수가 16%나 폭락하는 등 금융 혼란이 실물경제로까지 전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세계은행(WB)은 미국이 출구전략을 시행할 경우 신흥국의 금리가 올라가면서 경제규모가 장기적으로 최대 12% 가량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태규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