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5월 13일] 천안함과 6호정, 백년의 간극

SetSectionName(); [목요일 아침에/5월 13일] 천안함과 6호정, 백년의 간극 권홍우(편집위원) hongw@sed.co.kr

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재난도 그렇다. 문제는 그 처리와 극복 방법에 있다. 잘되는 국가나 기업은 사고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교훈을 얻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숭고한 인명이 희생된 천안함 사건을 도약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할 의무가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100년의 군함 침몰 사건에서 답을 찾아보자. 지난 1910년 봄, 일본에서 73톤에 불과하지만 최신형 군함 한척이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함정의 이름은 제6잠수정. 미국에서 다섯척을 직도입한 홀랜드급 잠수정을 가와사키 조선소에서 건조한 함정이다. 미국제보다 성능이 떨어졌어도 첫 국산 잠수정이었기에 일본은 우수인력을 뽑아 시험항해에 나섰다. 기대와 달리 두번째 잠항훈련에서 6호정은 히로시마만의 16m 해저에 가라앉고 말았다. 국격을 드높인 엄정한 죽음 침몰 이튿날 인양된 6호정은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14명의 승조원들이 흐트러지지 않고 자기 위치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장은 사령탑에, 기관장교는 전동기 옆에, 조타병은 조타석에서 죽었다. 영국 해군에서 동형의 잠수정이 침몰했을 때 먼저 탈출하려고 시신이 출입구에 엉겨붙은 채 발견되고 심지어 유럽의 어떤 나라에서는 난투극까지 일어났던 전례와는 완전히 다른 일본 군인들의 죽음에 세계가 전율했다. 일각에서 제기한 조작설도 정장 사쿠마 쓰토무 대위의 유서 하나로 자취를 감췄다. 사고발생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두시간 동안 그는 침몰 원인과 대응을 상황별로 기록했다. 975개자(字)의 유언 중 가장 감명을 준 대목은 일본 국왕에 대한 탄원. '폐하의 배를 침몰시키고 부하를 죽게 한 소관의 죄는 씻을 길이 없으나 승조원들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나이다. 그들의 유족이 곤궁하게 살지 않기를 오직 바라나이다.' 영국의 한 신문은 이런 기사를 실었다. '일본인들은 용감할 뿐 아니라 정신적ㆍ도덕적으로 빼어난 민족이다.' 장엄한 죽음 앞에 각국의 황제와 국가 원수들의 조전이 쏟아지고 영국해군의 교범에 6호정의 사례가 실렸다. 미국 의회 의사당에는 사쿠마 대위의 유서가 전시됐다. 일본을 '운 좋게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아시아의 노란 원숭이'쯤으로 여겼던 구미 각국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일본은 훈장과 특진, 영웅 칭호도 내리지 않았지만 위대한 자산을 얻었다. 국격도 높아졌다. 100년 전의 일본과 대조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천안함 사고가 발전의 계기가 되기는커녕 불신과 대립만 증폭시키고 있다. '천안함과 충돌해 침몰 원인을 제공한 핵잠수함 한척이 사고 발생 3일 만에 하와이로 돌아갔다'는 일부 진보세력의 주장은 상식을 의심하게 만든다. 오른쪽도 마찬가지다. 침몰의 원인이 북한의 인간어뢰 탓이라는 한 신문의 기사는 미국의 보수성향 신문인 LA타임스로부터 '007 첩보영화 수준'이라는 조롱을 들었다. 같은 침몰, 정반대의 파장 상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점은 정부도 매한가지다. 생존장병을 격리하고 백령도 주민의 입을 틀어막으며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채 한방향으로만 몰고 간다는 의혹 자체가 국격에 마이너스다. 국민들이 정부발표를 불신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무엇을 말할까. 무수한 의문점이 해소되지 않는 한 분란의 소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얘기다. 국격 역시 더 떨어질 수 있다. 문제를 푸는 길은 투명성에 있다. 자본시장에서도 정보의 비대칭성, 즉 일부만 정보를 갖고 있다면 결국은 시장 전체가 망가지게 마련이다. 모두가 한발씩 물러서고 정부는 보다 솔직해져야 할 때다. 100년 전 일본이 준 감동이 오늘을 사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든다. 두려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일부의 안위를 위해 진실이 억압된다면 한국은 100년이 걸려도 일본을 못 쫓아갈지도 모른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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