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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美 독식' 반발 고려 깜짝카드 꺼내
■ 오바마, 세계은행 총재에 김용 지명
문승관기자 skmoon@sed.co.kr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한 것은 최근 총재 자리를 두고 신흥국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를 무마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68년 전 세계은행이 설립됐을 당시부터 비공식 협정에 따라 총재를 선임해왔지만 신흥국들이 미국의 독주에 강력 반발하며 자체 후보를 지명하는 등 미국을 압박해왔다.
로런스 서머스 전 국가경제위원회(NEC) 의장이 그동안 유력 후보로 꼽혀왔지만 또다시 백인 남성이 세계은행 총재직을 맡는다는 비판과 하버드대 총장 시절 여성 비하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점 등이 발목을 잡으며 후보 지명에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은행 총재는 암묵으로 미국이 지명하고 유럽은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지명하는 관행이 이어져왔음을 되짚어보면 이번 결정은 '깜짝 카드'라고 미 현지언론들과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AP통신은 "서머스 전 의장의 과거 구설수가 입방아에 오르내리자 신흥국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 반영하면서 미국의 영향력은 유지할 수 있는 김 총장을 후보로 지명한 것"이라며 "다트머스대 출신인 미국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을 비롯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그를 천거했다"고 전했다.
세계은행의 투표 방식은 지원금에 따라 투표권 비중이 달라진다. 미국은 투표권 비중이 가장 높은데다 IMF 총재 선출시 유럽 출신 후보를 지원해주는 대가로 유럽 국가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투표권을 합산할 경우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결국 이번 총재 선거에서 이변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신흥국들이 얼마나 일치단결해 특정 후보를 밀어주느냐에 달렸는데 특히 중국과 같은 신흥경제국의 협조 여부가 중요하다. 지난해 IMF 총재를 선출할 때 중국은 유럽 출신 후보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를 지지하면서 총재에 오를 수 있도록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국이 아시아계 인사를 선택한 것도 국제사회에서 그 입김이 점차 강해지고 있는 중국 등 신흥국의 반발을 잠재우고 한 발 더 나아가 이들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이번 차기 세계은행 총재직을 두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중심으로 한 아프리카계와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남미계의 바람이 거세진 것도 미국이 아시아계를 선택한 이유로 꼽히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남아프리카를 비롯한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은 세계은행에서 집행이사를 역임한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나이지리아 재무장관을, 브라질 등 남미 국가들은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 콜롬비아 재무장관을 후보로 지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은행 이사회는 23일까지 후보 추천을 마치고 4명 이상의 후보군이 신청할 경우 면접에 임할 최종후보군으로 3명을 추려낼 예정이다.
한편 김 총재 후보는 1959년 한국에서 태어나 5세 때 미국에 이민을 갔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천재 장학금'이라 불리는 맥아더 펠로상을 받았으며 하버드대 의대 국제보건ㆍ사회의학과장으로 근무하던 중 400대1이 넘는 경쟁을 뚫고 2009년 다트머스대 총장 자리에 올랐다. 아시아인으로는 아이비리그 최초 총장이다.
1990년 중반에 페루에서 약품내성이 있는 결핵 퇴치를 위한 치료활동을 벌였고 2004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을 맡으며 에이즈 퇴치 프로그램 확대에 기여했다. 개발도상국 등의 가난한 사람들의 질병 퇴치를 주도해 2006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뽑히기도 했다.
김 총재 후보는 보스턴 아동병원 소아과 의사인 부인 임연숙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그가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되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이어 대표적인 국제조직에 두 명의 한국인 수장이 탄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