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10월 11일] 내실 있는 문화행정 필요하다

약간 싸늘해진 저녁공기를 느끼며 짙은 커피향에 이끌려 광화문 거리를 거닐며 커피 한 잔의 한가로움을 만끽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가을에는 치열한 삶의 현장을 뒤로하고 마치 귀족이나 된 듯 세종문화회관의 음악회를 가슴으로 느끼던 그런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마음 속에서 그런 여유가 흔적을 감춰 버렸다. 시간이 없고 또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우리에게 그런 음악회에 대한 관심이 없어져 버린 것 아닐까. 홍수처럼 밀려오는 정보의 바다에서 너무나 쉽게 손가락 끝 한번의 클릭으로 그 어떤 것도 가능하게 된 이 세태가 한편으로는 우리를 너무나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런 세태를 느끼는 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그냥 "좋은 대학만 들어가라. 인간성 그런 것이 밥 먹여주냐" 하는 식의 교육이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너무나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학교 교육에서 예체능의 시간은 이제 완전히 설 땅을 잃었다. 입시준비에 지친 몸을 쉬게 하는 시간, 아니면 그 과목들의 보충시간으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다.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국민소득 3만달러, 4만달러 시대에 살면서 모차르트가 뭔지 베토벤이 무슨 초콜릿 이름인지 헛갈리는 정도의 교양과 문화적 양식으로 세계 시장을 누비고 다닐 수 있을까. 문화 선진국의 교육정책을 보면 이 나라의 교육현실에 절망감을 느낀다. 이제 우리 국민소득에 맞는 그러한 정책들이 실행돼야 할 시기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현재 우리의 시간은 클래식의 위기 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문화지원이 엄청났던 독일도 통일을 기점으로 대대적인 예산 절감 운동이 일어났다. 그래서 각 도시의 오페라하우스들은 줄어든 예산때문에 대량 해고를 하거나 문을 닫는 일들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위기의 시간이 닥쳐와도 그들은 공영방송에서 줄어든 클래식 방송의 시청자나 국민들에게 클래식 음악방송을 계속해서 했다. 공영방송이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 방송들만은 시청률 경쟁에서 어느 정도는 자유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 공영방송의 실태를 보면서 긴 한숨이 나오는 이유도 그런 부분들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도 문화ㆍ예술에 대한 국가적인 예산지원은 우리 국민소득에 대비해 결코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예산들은 지금 과연 어디에 사용되는 것일까. 각 지자체들은 앞다퉈 예술회관을 초현대식으로 건설한다. 심지어는 구청의 구민회관들까지 초현대판이다. 필자는 생각한다. 아이들을 예술적인 교양은 없이 자라게 두면서 과연 그런 초현대식 건축물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까라고 말이다. 수천억원의 예산으로 예술회관을 건설하고 나면 무슨 여력으로 좋은 내용물을 채울 수 있을까. 결국 멋지고 호화로운 회관에서 수준이 안 되는 음악회나 예술행위를 감상하고 다시는 회관을 찾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이제 조금은 변해야 되는 시점이 됐다고 생각한다. 전시행정적인 호화회관 경쟁에서 탈피하고 그 속에 채울 좋은 내용물을 가꾸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요즘 서울경제TV 개국기념으로 김자경오페라단이 공연하는 오페라 카르멘에서 돈 호세 역할을 맡아 성악가로서 순수하게 관객을 맞기 위한 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오페라의 감동을 평생 간직하게 될 단 한명의 관객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필자에게는 지금까지처럼 이 무대가 일평생에서 가장 중요한 무대라는 생각뿐이다. 이 아침 필자는 우리 현실을 보면서 호화롭지 않은 종이봉지 포장 속의 아름다운 꽃다발을 받고 활짝 웃던 호로비츠의 얼굴이 아주 강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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