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거부 당한 대통령의 사과

지난해 4월15일오후2시50분(현지시간)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 결승선 부근에서 두 차례에 걸쳐 폭탄이 터졌다. 이 테러로 2만7,000여명의 대회 참가자 중 3명이 죽었고 260여명이 다쳤다.


10여분 후인 오후3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연방수사국(FBI) 국장 등을 불러 사건 파악 및 대책 논의에 나섰고 사건 발생 3시간 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피해자 가족들을 포함한 자국민들에게 "깊은 사과를 전한다. 모든 이들이 오늘 밤 보스턴을 기도해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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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꼭 1년 후인 2014년 4월16일. 서해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에는 476명이 탑승해 있었다. 사건 발생 보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생사확인조차 되지 않은 실종자는 90여명에 달한다. 그들의 영혼이 차디찬 맹골수도의 사나운 조류 속에서 얼마나 더 외로움에 떨어야 할지 알 길이 없다.

외신들은 이번 세월호 사고를 '민주화·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기적의 나라에서 발생한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라고 전하고 있다. 사고의 원인뿐 아니라 발생 후 구조와 수습과정, 정부의 사후 대처도 어설프기 그지없다는 시각이다. 임시변통이 아닌 게 없으니 외국인들의 눈엔 낯설어 보이는 게 당연할 수도 있다. "성장과 경쟁의 논리가 안전을 뒷전으로 하는 풍조를 만든 것"(아사히 신문) "한국 정부는 이미 불신의 낙인이 찍혔다"(환구시보)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안전상의 결점을 노출시켰다"(파이낸셜타임스). 매일 이어지는 외신들의 지적은 어느 것 하나 아프지 않은 게 없다.

지난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사 발생 14일 만에 공식 사과했다. 취임 후 1년 2개월 만에 나온 대통령의 다섯 번째 사과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국무위원들을 앞에 둔 간접 형식을 빌렸다. 이에 희생자 유족들은 비공개 사과는 사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거부했다. 어느 곳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지금 우리에게는 같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손을 잡고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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