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5월4일] 중국 5·4운동 발생

중국 노동ㆍ농민운동의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는 5ㆍ4운동이 1919년 5월4일 중국 베이징에서 점화됐다. 베이징 학생들이 군벌정부의 무능력과 일본의 산둥성 점령 결정에 반대해 시위에 나선 것. 제1차 세계대전 후 전승국인 일본ㆍ영국ㆍ프랑스ㆍ이탈리아ㆍ미국 등은 프랑스 파리에서 평화회의를 열어 독일이 가졌던 산둥성에 대한 권리를 일본에 넘기기로 결정한다. 또 일본은 유럽 열강이 중국 침략의 고삐를 늦추고 있는 틈을 타 21개 조항을 요구, 중국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킨다. 이에 격분한 베이징 학생 5,000여명은 반대시위를 벌이고 군벌정부가 이를 탄압하자 스트라이크로 대항했다. 학생들은 민족의 위기를 호소하고 한발 더 나아가 국산품 장려와 일본상품 불매운동까지 외쳤다. 베이징에서 불붙은 5ㆍ4운동이 이후 톈진ㆍ상하이ㆍ난징ㆍ우한까지 파급되자 다급해진 군벌정부는 학생 약 1,000여명을 체포하는 등 탄압의 강도를 높였다. 그러나 군벌정부의 이 같은 탄압은 민중의 분노를 불러일으켜 6월5일부터 상하이와 기타 도시에서 노동자 파업, 상점 폐쇄 등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실 5ㆍ4운동 이전의 노동자 파업 대부분은 기아와 빈곤에 대한 자연발생적인 항의의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정치적 힘이 명확히 발휘된 5ㆍ4운동은 도시 노동자와 젊은 지식인, 상인 등이 연합해 파리평화회의와 일본 제국주의, 친일적 군벌정부에 대해 분노를 폭발시킨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5ㆍ4운동은 중국의 신민주주의 혁명의 출발점이자 현대사의 새로운 기원을 여는 사건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5ㆍ4운동 이후 1920년과 1921년에 최초의 진정한 노동조합이 조직됐다. /박민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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