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노조도 변해라] <1> "노동조합 탈퇴합니다"

"책임있는 교섭 없고 파업만 남발" 원성<br>"노조 지도부 비이성적 판단 더이상 못따라가"<br>작년 조직률 10%…1~2년내 한자릿수 전망<br>가입가능 근로자 증가감안땐 5만명 줄어든셈<br>"노조가입 대기업 특권" 양극화도 갈수록 심각



“회사는 판매실적이 뚝뚝 떨어져 난리가 났는데 노조는 상급단체 지시라며 부분파업을 요구했습니다. ‘사용자의 착취’에 대항한다는 노조의 설립취지는 알겠지만 삶의 공동기반인 회사 생존을 뒤로 돌린 노조의 ‘비정상적인 판단’에 더이상 따라가기 싫었습니다.” 최근 대기업 단위 노조에서 탈퇴한 K(차장ㆍ42)씨의 탈퇴이유다. 정치투쟁에 매몰된 노동운동 지도부와 고용안정을 우선시하는 일선 노조원들의 괴리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노조원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노조조직률은 지난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며 89년 19.7%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져 노동 전문가들은 1~2년 안에 노조조직률이 한자릿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노동부와 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노동조합 조합원은 150만6,172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3만명 이상 줄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임금근로자 수는 15만4,000명 늘어났다. 2005년 노조조직률이 10.3%였던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지난 한해 동안 5만명 가까운 근로자가 노조를 이탈한 것과 마찬가지다. ◇‘당신들만의 잔치’=“중소업체에 다니는 친구들의 비난도 싫었고 친척과 이웃의 싸늘한 눈초리도 부담스러웠다.” 최근 들어 노조원들이 노동조합을 잇달아 탈퇴하는 것은 기존 노조의 과격하고, 강경하며 너무 정치적인 색채의 노동운동에 대한 염증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조조직률 하락은 노조 외부적으로는 제조업 종사 근로자 수 감소, 집단적 노동에서 전문적 노동으로의 노동의 성격 변화, 경영자들의 강한 반노조 정서, 여성ㆍ중고령 근로자 증가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노동운동 내부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87년 이후 20년 동안 사회는 엄청나게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 세력은 구태의연한 운동방식에 머물러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노동운동이 대기업과 정규직 중심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처럼 노조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기존 노동운동 지도부는 갈수록 영향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때마침 노동계에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최근 외부 기고를 통해 기존의 노동운동가들과 노동운동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최근의 심경을 밝혔다. “비정규직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데 노동운동은 그 앞에서 분열돼 힘을 전혀 쓰지 못하고 있다. 책임 있는 교섭은 실종된 채 ‘우리들만의 잔치’로 형식적 총파업만 남발하고 있다.” ◇‘노조가입이 대기업 특권(?)’=노조조직률 하락과 함께 노조원 사이의 양극화도 심각한 문제다. 노조에 가입한 근로자의 62.5%가 1,000인 이상 대기업 186개사 소속이다. 우리나라 노조원 10명 가운데 6명은 전체 단위 노조 5,971곳의 3.1%에 불과한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반면 노조원 가운데 급여나 노동조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300인 미만 중소기업 종사자는 전체의 23.1%에 그쳤다. 마치 노조가입 자체가 하나의 특권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됐다. 이정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노조조직률이 높은 제조업 종사자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데다 젊은 근로자들이 노조가입을 꺼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기업 노조의 경우 막강한 교섭력과 전임자 수를 바탕으로 조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영세 중소기업 종사자들의 경우 노조에서 이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노조가입 의사를 물어본 결과 노조가입 의향이 있다고 밝힌 36.4%의 평균임금은 152만원으로 노조가입을 원치 않는 노동자의 평균임금 140만원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성재민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 노조의 경우 대기업 정규직 위주로 운영되고 있어 학력이 낮거나 소득수준이 낮은 근로자들은 노조가입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 국가경제 큰부담" 76%
본지-취업포털 커리어, 1,038명 설문
"노조 이기주의가 국가경제에 심각한 부담을 주고 있다." "대기업 노조는 열악한 처지에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권익 향상에는 관심조차 갖고 있지 않다." 일반 시민들의 노동운동에 대한 불신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경제가 취업포털 커리어와 공동으로 지난달 21일부터 24일까지 일반인 1,03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들은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가 노동운동의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노동운동의 가장 큰 문제점'을 묻는 질문에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의 46.1%가 '과도한 노조 이기주의'라고 답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괴리 심화로 인한 근로자간 양극화'를 지적하는 응답자도 27.4%에 달했다. '폭력행사 등 불법행위'(17.1%), '지나친 정치세력화'(9.4%) 등도 노동운동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노조 이기주의가 국가경제와 기업경영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번 설문에서 응답자의 76.1%는 '대기업 노조의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가 경제 전반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고 답했다.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은 16.2%에 불과했다. 대기업 노조들이 비정규직 근로자처럼 열악한 처지에 있는 근로자의 권익 향상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시민들은 '전혀 아니다'(39.5%), '아니다'(28.0%) 등 67.5%가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시민 3명 가운데 2명은 대기업 노조가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며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답한 것이다. 이번 설문에서 최근 노동운동이 과격하고 폭력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66.2%가 '그렇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아니다'라는 견해는 22.4%에 그쳤으며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1.5%였다. 이와 함께 대기업 노조들이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관철시키기 위해 폭력적인 수단 동원도 불사하는 노동운동에 대한 우려도 많이 나왔다. 노조조직률 하락 원인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노동운동의 문제점 지적이 잇따랐다. 응답자의 36.0%는 노조의 성격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답했으며 23.9%는 노조가 권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노조의 과도한 이기주의(23.5%)와 강성 일변도의 투쟁(16.6%)도 근로자들을 노조와 멀어지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한편 시민들은 노사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운동과 경영진, 정부 모두에 변화를 주문했다.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위해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문제로 28.5%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개선을 꼽았다. 사용자와 노조는 물론 정부가 함께 나서 양극화 문제를 풀어야 노사관계가 나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노조의 준법의식 강화(27.7%), 귀족화된 대기업 노조의 변신(22.5%) 등 노조의 변화를 주문했다. 이어 사용자의 노조 존중(16.6%), 정부의 중립(4.6%) 등을 요구하는 지적도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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