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해 보이는 것들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며칠 전 신문 한 귀퉁이에서 읽은 작은 기사도 그런 예가 될 것 같다.
한국의 봉급생활자들은 62세까지 직장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웬만하면 그만두고 싶다는 게 월급쟁이들이 습관처럼 하는 푸념이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의 고용 현실에 비춰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는 운 좋은 월급쟁이가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그러고 보면 일을 하고 싶은데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는 것만큼 답답한 일도 없을 것 같다. 웬만큼 직장생활을 한 기성세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대졸자를 비롯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기는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현실이다. 대우와 근로 환경이 좋은 대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직장의 안정성 때문에 인기가 드높은 공기업의 입사경쟁률이 수백대일에 이르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졸자를 포함해 40여만명의 젊은이들이 일할 기회가 없어 빈둥거리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 고통이지만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인적자원의 낭비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취업난 때문에 아예 일자리 찾기를 포기한 실망실업자·취업준비생 등을 합치면 청년실업 문제는 훨씬 심각할 것으로 여겨진다.
고용 통계에 가려진 취업난
그러나 좀더 파고들면 청년실업자가 많다는 것만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전체 노동력의 35%가 자영업에 종사하는 후진국인 고용구조를 가지고 있다. 중소기업이 발달한 대만의 28%보다 높고 일본의 15%에 비해 두 배나 많다. 미국·독일 등 선진국의 자영업 비중이 10%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자영업이 얼마나 비대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종사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다 보니 본인 인건비도 제대로 못 건지는 한계 자영업자들이 늘어나 새로운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자영업주의 가족으로서 노력봉사하는 비임금근로자가 7.7%나 된다는 사실이다. 불완전취업자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선진국에는 이런 비임금 가족근로자가 거의 없다. 흔히 경쟁력을 강조하지만 이처럼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 엄청난 노동력이 묶여 있는 경제의 생산성이 높아지기는 어렵다.
여성인력의 활용도가 낮은 것은 것도 우리나라 고용구조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한 가지 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지만 지난 2004년 현재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3.9%로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60.1%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특히 대졸자와 같은 고학력 여성인력의 경우 경제활동참가율은 57.6%에 불과해 70~80%에 이르는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 일을 하지 않으려 해서인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만큼 인력 활용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노동력의 활용도를 나타내는 고용률을 보면 미국·스위스 등 선진국은 70%를 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63%에 불과한 실정이다. 자원이라고는 사람밖에 없다고 하면서도 막상 인력활용도는 형편없는 수준인 것이다.
일할 기회 제공이 최대 복지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나라 실업률은 3.7%로 완전고용 상태를 천연덕스럽게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고용통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부처들이 경쟁적으로 일자리 만들기 사업을 벌이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문제는 정부가 예산을 통해 만드는 일자리라는 게 대부분 일회성이거나 저소득층 지원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년실업 문제와 불완전취업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60세가 넘도록 일하고 싶어 하는 월급쟁이들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서도 일자리 창출은 시급하다. 복지가 강조되지만 좋은 일자리만큼 완벽한 복지가 있을 수 없다. 우리처럼 사람이 유일한 자산인 나라에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은 복지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기를 한꺼번에 잡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