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15일] '석유황제' 익스


헤럴드 익스(Harold Ickes). 루스벨트 대통령 밑에서 내무장관을 13년간 지낸 인물이다. 현대 경제사에서는 ‘석유 황제’로 더 유명하다. 1874년 3월15일, 펜실베이니아 태생인 익스는 전형적인 ‘개천의 용’.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렵게 시카고대학을 졸업한 후 시카고트리뷴지 기자로 일하며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는 법률 대신 사회개혁운동에 나섰다. 정치에도 뛰어들어 선거운동원으로서도 이름을 날렸지만 결과는 언제나 패배. ‘언제나 패자를 택하는 놀라운 능력’을 한탄할 무렵 기회가 왔다. 민주당 후보인 루스벨트가 개혁 성향의 서부지역 공화당원을 찾은 것. 선거전에 기여한 공로로 내무장관 자리를 받은 익스는 곧바로 ‘공공토목사업위원회’까지 맡았다. 후버댐 등 뉴딜정책의 토목사업을 총괄하며 능력을 발휘한 익스는 루스벨트의 절대적인 신임 속에 석유조정관직까지 따냈다. 대공황 당시 미국 석유산업의 고민은 유가 폭락. 수요가 없어 배럴당 3센트선까지 떨어지자 익스는 생산할당제를 도입, 유가를 끌어올렸다. 2차 대전 중에는 미국의 연안 유조선단이 독일 잠수함의 표적이 되자 장거리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휘발유 배급제를 도입했다. 연합국이 사용한 석유 70억배럴 중 60억배럴을 차지한 미국산 석유를 좌지우지한 그는 석유 황제로 불렸다. 최저가격제와 할당제ㆍ배급제는 종전, 익스 사망(1952년)과 함께 잊혀졌지만 ‘익스’라는 이름은 오늘날 정치에 살아 있다. 클린턴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익스는 초임 내무장관 시절의 익스가 36세 연하의 부인과 결혼해 65세에 낳은 아들이다. 여론조사ㆍ정치컨설팅 회사의 최고경영자로 근무 중인 아들 익스는 힐러리 상원의원의 대선 캠프에 곧 합류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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