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프랜드 원칙 내세웠지만… 미국 언론도 놀란 '자국기업 편들기'

■ 오바마, 애플제품 수입금지 거부권<br>기업간 특허분쟁 직접 개입<br>표준특허 견제 의지 드러내<br>물밑협상 벌이던 삼성 "유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표면적으로 프랜드(FRAND) 원칙을 내세웠지만 속내는 정치ㆍ경제적 상황을 고려한 자국 기업 손 들어주기로 보인다. 준사법적 독립기구인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결정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지난 1987년 삼성전자의 컴퓨터 메모리칩 관련 분쟁 이후 무려 25년여 만에 처음이라는 점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정ㆍ재계의 압박과 로비에 밀려 자국 기업 편들기에 나선 것으로 향후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주의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 거부권 행사는 삼성전자와 애플 간 세기의 특허분쟁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당장 오는 9일 ICT가 삼성의 특허침해 제소 건에 대한 최종판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을 보여 이번 거부권 행사로 인한 파장이 만만찮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자국 기업 편들어주기… 정ㆍ재계 압박도 한몫=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서 주목할 점은 1987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라는 대목이다. 자유무역정책을 주창하면서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한 기업 혁신, 아이디어 창출을 통한 국가경쟁력 향상 등을 역설해온 오바마 대통령이 기업 간 분쟁에 직접 개입했다는 점에서도 의외의 결정이다. 미국 현지 언론들도 거부권 행사 발표에 대해 "예상하지 못한 조치"라면서 놀라움을 나타냈다. 결국 미국의 정ㆍ재계에서 백악관을 상대로 노골적인 로비를 벌인 것이 주효해 거부권 행사를 이끌어낸 셈이다. 거부권 행사 여부 판단을 앞둔 최근 미국 연방 상원의원 4명이 소비자들의 피해가 커질 우려가 있다는 논리로 수입금지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놓으며 거부권 행사를 종용했다.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의 랜달 밀히 부회장이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는 글을 기고했고 다른 이통사인 AT&T 역시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애플 제품 수입금지에 거부권을 행사하라고 압박하는 등 노골적으로 애플 편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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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특허 남용금지 의지 확인… '보호주의' 비판 커=무엇보다 미국 대통령이 기업 간 특허분쟁에 직접 개입했다는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커 이번 거부권 행사는 산업계ㆍ정치권에 상당 기간 핫이슈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은 오바마 행정부가 최근 강조하고 있는 표준특허 남용 금지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따라서 향후 표준특허 남용 견제에 나설 경우 다수의 이동통신 표준특허를 보유한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애플과의 특허전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자유무역을 역설해온 오바마 대통령이 '보호주의정책'을 펴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도 커졌다. USTR의 마이클 프로먼 대표는 거부권 행사 이유에 대해 "미국 경제의 경쟁 여건에 미칠 영향과 미국 소비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검토했다"며 "특허 보유권자가 법원을 통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ITC의 결정을 번복할 만한 구체적인 논리는 제시하지 못한 채 자국산업과 소비자 우선에 기인한 판단이었음을 시사한 것이다. 특히 이는 삼성전자 제품이 수입금지될 때도 적용될 수 있는 문제로 삼성전자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거부권 행사로 삼성전자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다시 한 번 무릎을 꿇게 됐고 앞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민 깊어지는 삼성, 특허전쟁에 '먹구름'=거부권 행사로 현재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삼성전자와 애플 간 특허협상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ITC 결정대로 수입금지 조치가 내려지면 그동안 크로스 라이선스에 소극적이던 애플이 적극적으로 나서 양사 간 물밑협상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됐지만 이번 관측은 물 건너갈 공산이 커졌다. 또 이번 결정에 따라 9일 예정된 ITC의 삼성전자 특허침해 여부에 대한 최종판결에도 적지 않은 변수로 작용할 수 있어 삼성전자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는 "애플이 우리 특허를 침해하고 라이선스 협상에 성실히 임하지 않았음을 인정한 ITC의 최종 판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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