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6월22일] 조시아 차일드


양다리 걸치기와 주가조작의 명수. 동인도회사 총독이자 경제학자. 조시아 차일드(Josiah Child)의 면면이다. 출발은 군납업자. 1630년 런던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 태어나 도제수업을 받은 후 독립, 크롬웰 치하 군대의 군납업과 양조업으로 돈을 모았다. 1658년 28세 나이에 포츠머스 시장에 올랐던 그는 왕정복고(1660년) 후에는 더욱 많은 자재를 공급해 거부로 떠올랐다. 정권교체에도 군납업자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주요 정치인과 왕실에 대한 뇌물. 1672년에는 군 식량공급권까지 따냈다. 차일드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당시 블루칩인 동인도회사에 투자할 때는 헛소문을 퍼뜨려 주가를 떨어뜨린 후 헐값에 되사는 수법으로 차익을 챙겼다. 1672년 동인도회사 이사를 거쳐 부총독(1681~83), 총독(1686~88)을 맡을 때도 시세조종을 일삼았다고 전해진다. 작전세력이라는 악명에도 차일드는 왕실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돈. 한창때는 매년 1만기니씩의 비자금을 왕실에 보냈다. 두번째 이유는 바다 개척을 희망하던 영국의 입맛에 맞아 떨어지는 극단적인 중상주의 이론을 펼쳤기 때문이다. ‘무역과 금리에 대한 소고(1688년)’에서는 당시 영국보다 앞서가던 네덜란드의 경쟁력이 높은 저축률과 낮은 금리, 자유무역 덕분이라며 무역 활성화를 부르짖었다. 동인도회사를 단순한 상관(商館)에서 자체 군대까지 갖춘 식민지수탈기관으로 변모시킨 사람도 차일드가 시초다. ‘무관의 제왕’ 차일드가 1699년 6월22일 69세로 사망한 지 308년. ‘학자라기보다는 말 많은 장사꾼’으로 불렸지만 그가 뇌까린 무역에 대한 정의는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모든 무역은 일종의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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