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수필] '혹시나'의 씁쓸한 뒤끝

요즘 초대형 경품들이 유행인 모양이다. 자동차가 경품으로 등장하고, 심지어는 아파트 한 채가 경품으로도 등장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의 한 백화점에도 28평짜리 아파트 한 채가 경품으로 내걸렸다. 다른 곳의 예를 보면, 이곳의 당첨률 역시 몇십만 분의 일 정도를 기록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응모권을 나눠주는 행사장은 당첨확률과는 상관없이 수많은 인파들로 가득 메워져 있다.그 몇십만 명 중의 하나가 바로 나다. 복권도 사봤고, 크고 작은 경품 응모권도 몇번이나 써내봤고 심지어는 방송사의 퀴즈 응모에 전화를 걸어본 적도 있지만, 단 한 번도 이렇다 할만한 당첨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추첨에 대한 행복한 기억은 내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당시 5대 1의 경쟁에서 당첨이 되었다는 것과 즉석식 복권에서 5,000원짜리가 한 번 당첨되었던 적이 있었다는 게 고작이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갔지만 내 아이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그 유치원을 중도하차했고, 5,000원짜리 복권에 당첨이 되었지만 그 5,000원은 다시 복권으로 바뀌어진 후, 그 절반의 액수만큼도 건질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꿈을 꿨다고 한들, 그것이 추첨에 의한 행운으로 이어질 거라는 기대는 애시당초 갖게되지도 않는다. 차라리 돼지꿈을 꾼 다음 날이면 길거리에 떨어진 돈을 찾는게 더 낫다 싶기도 하다. 그런데도 28평짜리 아파트의 유혹은 버리기가 만만치가 않은 모양이다. 어차피 한명은 당첨이 될 터인데 그 중의 하나가 내가 아니란 법이 있느냐는 생각도 든다. 또 아닌들 어떠한가. 추첨일까지는 온갖 몽상을 다 굴리면서, 당첨된 뒤 세금낼 생각, 아이 학교를 전학시킬 생각, 실내는 어떻게 꾸밀까까지 다 생각하면서 당분간은 그저 그런대로 행복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한다. 응모권을 나눠주는 백화점에 갔더니 몇주년 행사라고 사은품이 대단치도 않고, 그 사은품을 얻기 위해 물품을 구입해야 하는 매장마다 또다시 개별 사은품들이 매력적이다. 세일이라는 이유로, 사은품을 얻어야한다는 이유로, 지갑을 텅 비워놓고 돌아오면서 나는 내가 돈을 벌었나, 잃었나 아리송해진다. 정말 아파트에 당첨이 될까 안 될까, 하는 생각보다도 갑자기 왜 이렇게 지갑이 가벼워졌나 하는 생각에 더 골치가 아프다. 세상에 공짜는 아무것도 없다는 진리가 새삼 위대하게 느껴진, 백화점 나들이다. 金仁淑(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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