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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석의 '말하는 카메라'] (3) “벗겨야 사는 사진 동호회”


카메라를 처음 샀다. 카메라작동법도 궁금하고 남들처럼 멋들어지게 찍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초보자가 이러한 고민을 하고 들르는 곳은 ‘인터넷 사진 동호회 사이트’다. 사이트는 마치 포털 검색사이트처럼 갤러리, 포럼, 장터, 게시판 등 다양한 카테고리에 유익한 정보가 넘쳐난다. 전문가들도 자료를 구하기 위해 찾을만큼 정보의 양은 풍부하고 고수들이 많아 기술을 터득하는 데 손색이 없다.


하지만 사진 동호회 사이트를 처음 접속하는 사람이라면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사이트 상단에는 그날 가장 인기 좋은 회원들의 사진이 게재된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몇 장의 풍경 사진을 제외하고는 젊은 여성의 벗은 사진이 대부분이다. “눈이 호강한다” “몸매가 후덜덜 합니다” “명작이네요.” 등의 댓글로 미뤄 볼 때 어떤 미학이 이 세계를 관통하는지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만 유독 괜찮은 사진이 없어서 그렇겠지 하는 순진한 의심은 버리는 게 좋다.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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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신체에 대한 집단적 관음주의는 비단 온라인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사진 동호인들의 폭발적 관심을 끄는 행사가 있다. 바로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누드촬영대회’다. 대회 방식은 간단하다. 주최 측은 아름다운(?) 풍광 속에 누드모델을 섭외하고 대회소식을 알린다. 구름떼같이 몰려온 참가자들(대부분 중년 남성)은 참가비를 내고, 참가증을 목걸이에 걸고 누드모델을 삥 둘러싸고 셔터를 누른다. 끊임없이 나오는 셔터 소리와 치열한 자리싸움은 올림픽 경기 결승을 방불케 한다. 주최 측은 그중에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을 선정해 시상한다.

카메라가 여성의 몸에 관심을 가진 역사는 길고, 누드도 예술의 영역이다. 더군다나 사진을 취미로 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상상해보라. 카메라와 장비로 몸을 휘감은 아저씨들이 떼 지어 벗은 여자를 둘러싸고 경쟁적으로 사진찍는 모습을, ‘사회정의’에 대해 말하길 좋아하는 사진사이트 간판에는 여성 신체에 대한 호기심에 가득찬 사진들로 넘쳐나는 장면을… 사진동호인 다수가 남성이고, 고가의 장비를 구매할 여력이 있는 중년 남성에 편중돼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사진에는 관음증적 시선이 많게든 적게든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동호인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집단적으로 ‘여성의 몸’에 빠져있다. 예술성을 추구한다기보다 어떻게 하면 갤러리의 노출 가이드라인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선정적인 모습만 보여 주기에 급급하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 만약 본인의 어린 자녀가 사진이 좋아 배우고 싶어 한다면, 사진동호회사이트에 들어가 보라고 권하겠는가? 아니면 주말에 아빠랑 같이 촬영대회 나가보자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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