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우리의 기술력이 세계 정상급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외국어 실력이 떨어져 소통이 잘 안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세계 많은 나라가 제조업 육성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기술 인력이 어학 실력만 갖춘다면 해외 취업 길은 무궁무진합니다."
박종구(55·사진)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은 지난 1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술 인력도 외국어 실력을 쌓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폴리텍대학은 산업현장에 바로 뛰어들 수 있는 기술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2006년 전국의 기능대학과 직업전문학교를 통합해 설립된 기관이다. 이 때문에 한국폴리텍 학생 입장에서는 기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이들에게 영어 공부를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 박 이사장은 "단순히 기술만 가지고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한다. 그는 "융합이 중요해지는 세상에서는 기술뿐만이 아니라 어학 능력과 교양까지 두루 갖춘 균형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실제로 어학 능력은 산업현장에서 여러가지로 쓸모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외국에서 들여온 기계의 설명서를 해석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때 외국어 능력은 곧 기술력으로 연결된다. 또 직장 내에서 승진하고 관리자가 되며 업무 영역이 넓어질수록 외국어의 필요성은 커진다.
탁월한 기술력에 영어가 뒷받침된다면 해외 취업의 길도 한층 넓어진다는 것이 박 이사장의 지론이다. 그는 "남미나 동남아시아 등지의 여러 개발도상국은 수출을 위해 제조 인력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우리 기능인력이 진출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며 "호주만 하더라도 한국 기술인력에 대한 인식도 좋고 임금 수준도 높은데 영어로 소통이 되는 사람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박 이사장의 철학은 한국폴리텍 교과과정에 그대로 반영됐다. 2011년 8월 취임 당시 한국폴리텍의 영어 과목 이수학점은 2학점에 불과했으나 올해에는 6학점으로 늘어났고 내년에는 8학점까지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학생들의 글로벌 실무 능력 강화와 해외취업 확대를 위해서다. 또 방학마다 전북 남원 연수원에서는 2주 과정의 영어캠프가 운영되고 있다.
학생들의 글로벌화와 함께 폴리텍대학도 2020년 세계 최고 직업교육기관으로 우뚝 서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좋은 기능 인력이 필요한 나라라면 당연히 한국폴리텍으로 찾아오는 글로벌 명문으로 만들겠다"며 "미국·호주·싱가포르·영국 등 우선 영어권 국가와 교류를 확대하며 네트워크를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폴리텍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직업훈련 교육에도 앞장서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적개발원조(ODA)에 2005년부터 참여해 아프리카와 아시아·중남미 등 15개국의 직업훈련 기관 건립을 지원했으며 국제협력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박 이사장은 "한국의 직업훈련 시스템이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가장 배울 만한 성공모델로 알려지면서 노하우 전수에 대한 요청이 늘고 있다"며 "저개발국에는 현금을 지원하는 것보다 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이 훨씬 큰 효과를 내는데 한국폴리텍대학도 이 같은 역할을 확대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 이사장 취임 이후 2년5개월 동안 한국폴리텍대학에 부는 변화의 바람은 자연적으로 인지도 상승으로 연결되고 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박 이사장이 취임하던 2011년 54%에 불과했던 한국폴리텍대학의 인지도는 최근 79%까지 높아졌다. 이는 지난해 취업률이 82.3%를 기록하면서 2년 연속 80%를 넘어선데다 기업 관계자 사이에서 한국폴리텍 출신들에 대한 평가가 점점 좋아지고 있기 때문으로 박 이사장은 분석했다.
그는 한국폴리텍이 산업 현장에서 환영받는 이유로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인력 양성 △실습 중심의 현장 맞춤형 교육과정 △어학·교양 등 융합형 인재 교육 강화 등을 꼽았다. 박 이사장은 "국내 대학 최초로 산업현장과 강의실을 연동시킨 FL(Factory Learning) 시스템을 도입해 기업현장에서 이뤄지는 모든 과정을 강의실로 그대로 옮겨와 현장기술을 가르쳤다"며 "기업과 연계한 프로젝트 실습을 늘리고 교수 1인당 10여개의 기업을 전담 관리하도록 한 점 등도 취업률을 끌어 올리는 데 주요했다"고 설명했다.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 발맞춰 대학 교과과정을 변화시킨 점도 폴리텍대학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 박 이사장은 "새롭게 떠오르는 바이오산업이나 녹색 산업 등 최신 흐름에 맞춰 전공의 20%를 신성장동력 관련 학과로 개편했다"며 "예를 들어 서울 정수캠퍼스는 자동차학과의 기능을 강화하는 등 캠퍼스별로 대표 학과도 육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한국폴리텍은 제조업의 기본적인 뼈대를 이루는 기계와 전기·전자·금형 등 분야의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본연의 임무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박 이사장은 "국내 139개 전문대를 살펴보면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많은 컴퓨터와 정보기술(IT), 간호, 의상 등 몇몇 분야에 편중돼 있다"며 "이와 달리 한국폴리텍은 국책 교육기관으로서 자동차와 중공업·조선 등 제조업 분야에서 뛸 수 있는 기술 인력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직업교육 현장을 두루 둘러본 박 이사장은 우리나라의 직업교육 체계가 한걸음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업과 직업훈련기관이 더욱 밀접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직업훈련 선진국들은 기업이 직접 직업훈련과 인력양성에 참여하는 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고 말하며 독일의 사례를 소개했다. 듀얼 시스템이라 불리는 독일의 도제식 훈련의 경우 학생이 일주일 중 1~2일은 학교에서 이론을 공부하고 나머지 기간은 기업현장에서 실습을 한다. 이를 통해 학생은 곧바로 취업하고 기업은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인재 확보가 가능해진다. 박 이사장은 "우리나라 직업훈련은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시스템에 가까우므로 교육훈련과 산업현장을 긴밀히 연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국폴리텍대학은 은퇴를 앞두고 있는 베이비붐세대와 경력단절 여성, 다문화 가정 등 취업 취약계층을 위한 직업 훈련 과정을 운영함으로써 이들이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경력단절여성 700명, 베이비붐세대 훈련과정 1,000여명을 상대로 교육을 했는데 내년에는 이를 3,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경력단절여성에 대한 직업 교육은 지금까지 기계와 전기·전자 등 기간산업 중심 직종으로 이뤄졌지만 앞으로 디자인과 패션·IT 등 여성 친화적 직종과 지식정보화 산업 분야로 훈련 분야를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베이비붐세대 훈련과정 역시 보일러와 특수용접·전기공사·도배 등 블루칼라 직종에 대한 교육훈련에서 점차 물류 처리, 쇼핑몰 관리운영, 스마트전기통신설비 등의 다양한 직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박 이사장은 "우리나라는 아직 사회적 안전망이 약한데 베이비붐세대의 은퇴는 늘고 있고 고령화도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며 "한국폴리텍의 재교육 기능을 강화해 취업 취약계층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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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3시간 독서하는 학구파… 학생에도 인문학 강조 임진혁·서민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