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4월 24일] <1679> 중국, 인공위성 발사


1970년 4월24일, 중국 간쑤성(甘肅省) 주취안(酒泉) 우주기지. 길이 29.86m짜리 창정(長征) 1호 로켓이 솟아올랐다. 발사시각 오후9시35분. 독일제 V2로켓과 소련의 기술 원조를 바탕으로 제작된 창정 1호는 발사 13분 뒤 인공위성 둥팡훙(東方紅) 1호를 궤도에 안착시켰다. 세계는 중국을 다시 봤다. 기술이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다. 중국보다 2개월 앞서 '네번째로 인공위성을 발사한 국가'가 된 일본이 4전5기를 거친 반면 중국은 단숨에 성공시켰다. 위성의 무게도 173㎏로 일본의 오수미위성(24㎏)보다 7.2배나 무거웠다. 마음만 먹으면 인공위성 운반체를 대륙간탄도탄(ICBM)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뜻이었기에 긴장할 수밖에. 다섯번째 위성발사 국가이지만 실력은 3위라는 분석이 바로 나왔다.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혁명가요를 28일 동안 송출한 둥팡훙 1호의 성공은 거대한 시작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중국의 우주기술은 유인우주선 발사를 넘어 오는 2020년 달기지 건설까지 추진하고 있다. 우주에서 미국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도 꼽힌다. 자신감에 찬 중국은 '우주전쟁은 필연'이라고 말할 정도다. 중국은 어떻게 놀라운 성공을 거뒀을까. 국가의 지원도 많았지만 답은 '올곧은 사람'에 있다. 미국 최고 대우를 뿌리치고 조국에 돌아와 98세 평생(2009년 타계)을 우주개발에 바친 첸쉐썬(錢學森)은 저택을 주자 '이미 인민보다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며 사원숙소에서 머물렀다. 귀국(1932년)할 때 실험설비를 자비로 구입해 국가에 바쳤던 자오중야오(趙忠堯ㆍ1998년 사망)는 직접 만든 비누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핵물리학자들을 길러냈다. 요즘도 해마다 2만여명의 과학자들이 유학을 마치고 중국에 돌아온다.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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