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중심과 주변

오철수 <증권부 차장>

지난 11세기에서 16세기까지 이탈리아 베니스는 세계 무역의 중심이었다. 베니스는 북유럽과 아드리아해, 서아시아를 잇는 장거리 해상 수송로를 장악하면서 아시아와의 교역을 사실상 독점했다. 이런 베니스가 쇠락의 길로 접어든 것은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 항로를 발견하면서부터다. 희망봉 항로는 북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수송비용을 대폭 떨어뜨렸고 기존의 무역로처럼 알프스 산을 넘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었다. 이후 포르투갈의 리스본은 베니스를 제치고 세계무역의 중심으로 급부상했다. 베니스의 사례는 중심과 주변의 역학관계를 잘 보여준다. 한때 번성하던 도시들도 경쟁력 있는 도시가 등장하면 하루아침에 변방으로 밀려나게 되고 이전에는 보잘 것 없던 도시들도 새로운 경쟁력을 바탕으로 화려하게 등장하기도 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세계의 중심이 되려는 각국의 노력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참여정부도 ‘동북아 중심’을 국정의 주요 과제로 선정, 동북아시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2년 이상 지난 지금 우리의 현주소는 어떤가. 정부는 부산ㆍ광양항을 동북아 허브항으로 육성하겠다며 요란하게 떠들었지만 우리 항구들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정권출범 초기 세계 3대 컨테이너항이었던 부산항은 상하이나 선전 등에 밀려 5위권으로 추락했다. 사정은 자본시장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동북아 최고의 자본시장’을 표방하며 해외기업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기업들이 증시에 상장하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싼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하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증시가 과연 뉴욕이나 홍콩 등 경쟁 거래소에 비해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에 상장을 한다 해도 제값을 받기가 어려운데다 자금조달 비용마저 외국보다 낮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기업들이 국내증시에 들어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뚜렷한 전략도 없이 말로만 동북아 중심을 외치는 사이 우리가 세계의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지 않은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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