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요초대석] 양덕준 레인콤 사장

“벤처기업은 창업 할 때부터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명확한 로드맵을 설정해야 합니다. 경쟁 상대가 대기업 혹은 글로벌 기업이라 자본력에서 밀린다면 감성적으로라도 그들에 맞설 만한 서비스력, 마케팅력을 갖춰야 합니다. 또 대기업납품이 목표라면 해당 회사의 정보를 면밀히 파악해야 합니다. 즉, 자신의 눈높이를 명확히 하고 자신의 수준을 거기에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지난해 연말 코스닥시장 등록 첫날 시가총액 8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은 MP3플레이어제조 벤처기업 레인콤의 양덕준 사장. 그는 벤처기업의 성공공식으로 `눈높이론`을 첫번째로 꼽았다. 이미 시장을 선점한 경쟁상대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맞는 목표를 설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쟁상대는 이미 제트기를 만들고 있는 데 경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결국 경쟁사가 제트기를 만들고 있다면 벤처기업은 눈높이를 최소한 제트기를 만들고, 이를 넘어선 우주선 개발에 도전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 사장은 “레인콤 역시 최종 경쟁상대를 소니, 파나소닉 같은 글로벌 대기업으로 삼고 그들의 기술ㆍ브랜드ㆍ서비스 수준에 눈높이를 맞췄다”면서 “전직원이 명확한 목표를 공유하고, 개인과 조직의 역량을 그 수준에 맞춰 나갈 때 비로소 `최고`에 도전할 수 있다” 고 주장했다. 그는 또 중소ㆍ벤처기업이 지니고 있는 최대 장점인 창의성과 순발력을 극대화해야 한다며 `액상조직론`을 펼쳤다. 양 사장이 주장하는 `액상조직론`이란 직원 모두가 평등하고 자율적인 객체로 자유롭게 활동하면서도, 어떤 매개가 있을 땐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해 참여함으로써 창의성과 순발력을 극대화하는 경영전략이다. 즉, 직원들의 창의적인 사고와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직원 개개인의 능력은 물론, 조직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그 동안 하나의 사업계획을 세우면 극히 소수의 인원만 임명하고, 나머지는 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맡겨뒀다”면서 “결국 직원들 하나하나가 스스로를 회사의 부속품이 아닌 자유로운 `씽크탱크`로 생각하게 됐고, 이는 결국 다른 업무간 공백을 메우는 효과도 있어 순발력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레인콤은 벤처기업계가 퇴화조짐이 보이던 지난 99년 설립했다. 지난 3년간의 극심한 벤처업계 침체기에도 불구하고 비약적인 성장을 거둬 현재는 세계 MP3플레이어 시장의 30%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지난해 2,300억원의 매출에 이어 올해는 3,800억원에 도전하고 있으며, 최근 코스닥시장에도 등록해 메디슨, 다음 등의 뒤를 잇는 `벤처신화`로 평가 받는다. 벤처업계 침체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벤처기업의 성공가도를 달리고있는 레인콤. 이 회사의 CEO가 생각하는 국내 벤처기업계의 회생방안은 뭘까. 그는 “투자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국내 벤처기업계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투자를 결정하는 주체와 투자를 유치하려는 기업의 자세 모두 바뀌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양 사장은 “벤처선진국에서는 벤처캐피털은 기업을 평가할 때 기술ㆍ경영ㆍ마케팅력 등을 종합 고려하고, 기업 역시 이 같은 역량을 고루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벤처캐피털은 유행에 따라 투자를 하고, 벤처기업은 완성도 안된 기술만 가지고 투자를 유치하려고 하기 때문에 성공확률이 더욱 낮아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양 사장의 주장은 레인콤의 성장역사를 볼 때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99년 레인콤 설립 당시 국내에는 `닷컴열풍`이 불고 있었고, 제조업종의 벤처기업은 단지 `굴뚝산업`이란 이유만으로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실제로 레인콤 역시 당시 국내 투자유치에 실패했고, 오히려 해외에서 투자 받은 자금으로 사업을 전개해 현재의 레인콤으로 성장했다. 또한 양 사장은 국내 경기침체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국내 제조업 공동화현상, 이공계 기피 현상 등으로 인한 국내 중소ㆍ벤처제조업의 위축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며 “중소ㆍ벤처기업은 자생력을 기르고 변화에 스스로 적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실 벤처기업은 다른 기업에 비해 법인세 등에서 많은 수혜를 입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정부의 그늘 아래서 위험을 피할 수는 없다”면서 “국내의 인력난 심화, 생산비 증가 등 경영환경의 변화는 대세인 만큼 기업 스스로 이 같은 위험을 헤지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MP3플레이어 종주국`이라고 불릴 만큼 기술력을 세계시장에서 인정 받고 있다. 또한 최근 몇 년간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IDC는 올해 세계 MP3플레이어 시장을 2,000만대로 내다봤다. 양 사장도 이 같은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현재 전세계의 휴대용 오디오가 6,200만대 정도 보급되어있는 데 매년 2%정도 밖에 성장하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정체기를 겪고 있다”고 소개하고, “이 같은 휴대용 오디오를 MP3플레이어가 급속히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약 800만대 정도만 보급된 상황인데다, MP3플레이어 사용자층이 젊은 층에서 점차 중장년ㆍ노인층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추세라 대체시장 수요는 수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내 MP3플레이어 업계는 외국 제품들에 비해 소프트웨어가 뛰어나고, 완성도면에서 탁월하기 때문에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면서 “특히 휴대용 제품은 개인의 취향, 사회적 신분 등도 반영하는 만큼 유행은 빠르고, 제품 생명은 짧기 때문에 MP3플레이어도 휴대폰과 비슷한 형태로 시장을 형성하고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MP3플레이어 제품 하나만 보유하고 있는 국내 MP3플레이어 제조사들의 지속적인 성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MP3플레이어 기능을 첨가한 휴대폰, 디지털카메라 등이 속속 나오면서 기존 MP3플레이어 시장이 대폭 위축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양 사장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반박했다. 양 사장은 우선 모든 기기가 그렇듯 MP3플레이어도 점차 진화를 거듭할 것이며, 진화의 흐름 속에 새로운 형태의 MP3플레이어가 생겨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3~4년 전만해도 64메가 제품에 만족하던 소비자들이 이제는 512메가 용량의 제품을 선호하고, 이를 넘어서 수십 기가에 이르는 제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단순히 음악을 듣는 차원을 넘어서 학습, 동영상, 게임 등을 MP3플레이어를 통해 즐기려는 욕구도 나타나고 있다”면서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추기 위해 앞으로 기본적으로 대용량을 갖췄으면서도 동영상, 게임 등의 콘텐츠를 소화할 수 있는 기기들이 새롭게 출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 사장은 이어 디지털 기기들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각각의 특성을 점차 강화하면서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기능을 하나의 하드웨어에서 구현하는 것은 상업성있는 컨버전 제품이 아니다. 예를 들어 최근 경쟁적으로 휴대폰에 디지털카메라가 추가된 신제품이 출시되고 있지만 이는 휴대폰 시장보다 오히려 디지털카메라 시장을 더욱 성장케 해준 견인차 역할을 했다”면서 “하나의 기기에 다양한 기능을 첨가하다 보면 가격이 올라가고, 상품이 커지기 때문에 경쟁력을 잃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공한 벤처CEO`로서 그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전직원이 먹고 살만큼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문화와 레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여유를 갖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대답했다. 그 때가 과연 언제일까라는 질문에 “아마도 매출 1조를 달성할 때가 아닐까요”라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짓는 그의 모습에서 양 사장의 도전은 이제야 시작임을 느끼는 건 무리일까. 대담 : 박민수 성장기업부장 ■ 발자취 삼성전자서 20년 근무 `해외통` 창업 4년만에 `벤처신화` 일궈 양덕준 사장은 20년간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면서 대부분을 해외영업 관련 업무에 종사해 `해외통`으로 통한다. 특히 홍콩을 비롯한 아시아지역에서는 독보적인 인맥과 네트워크를 자랑한다. 양 사장은 지난 78년 삼성반도체에 입사한 이후 85년부터 삼성전자 반도체 미국법인 주재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삼성전자 홍콩지점장을 거치면서 코드레스 전화IC 시장점유 1위, 비메모리 반도체부문 아시아 시장점유 1위를 달성했다. 그 공로를 인정 받아 95년에 삼성전자 반도체 비메모리 마케팅 수출 담당 이사로 승진했다. 항상 주변 사람을 챙기는 사람중심의 인생관은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한다. 회사동료이자 친구인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 강호문 삼성전기 사장 등 산업계는 물론, 언론계ㆍ법조계ㆍ학계 등 어떤 인사들과 허물없이 잘 어울린다. 사람을 중시하는 인생관은 사업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됐다. 양 사장은 고객서비스센터를 방문한 고객들과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자사 제품의 장단점에 대해 듣기를 즐긴다. 수리요청이 들어 온 제품에 일일이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친필편지와 사은품을 동봉해 택배로 배달한 감성마케팅 전략은 지금도 업계에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취미 또한 매우 자유롭고 독특하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기분전환이 필요할 땐 종종 머리염색을 해 주변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여가시간에는 무협지와 게임을 즐길 정도로 `소년`같은 기질도 갖고 있다. 이처럼 열린 사고 덕분에 나이에 상관없이 그와 한번 얘기를 나누면 곧 그의 팬이 된다. MP3플레이어 사업을 시작할 때 “그냥 저와 직원들이 먹고 살 만큼만 성장하길 바랬다”는 그의 말에서 예의 `잘 나가는`벤처기업CEO들의 기고만장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부인 이미숙 여사와 1남1녀 ◇약력 ▲51년 대구 출생 ▲69년 대구 계성고등학교 졸업 ▲77년 영남대학교 응용화학과 졸업 ▲78년 삼성반도체입사 ▲85년 삼성전자 반도체 미국법인 주재원 ▲88년 삼성전자 홍콩지점장 ▲95년 삼성전자 반도체 비메모리 마케팅ㆍ수출담당 이사 ▲99년 레인콤 대표 ▲2001년 한국무역협회 2,000만불 수출의 탑 수상 ■ 내가 본 양덕준 사장 소박하지만 판단력ㆍ프로근성 강해 직원ㆍ고객등 챙기는 따스함 돋보여 학창시절 양덕준 사장은 소박하고 친근함 속에 날카로운 통찰력과 강한 리더십을 가진 친구로 기억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늘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고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인물이었다. 일단 결정이 되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는 그의 열정적인 자세에 감복하곤 했다. 언젠가 양 사장이 먼 훗날 무인도 같은 조그마한 섬에 나만의 유토피아를 만들어 보고싶다며 개인적 꿈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언뜻 보면 엉뚱한 농담 같지만 반짝이는 양 사장의 눈을 보고 있자면 공상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성공가도를 달리던 직장을 접고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벤처기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염려했지만 난 그의 성공을 예감할 수 있었다. 그의 따뜻한 인간미와 냉철한 판단력, 그리고 투철한 프로근성은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 사장의 중심은 늘 사람이다. 직원이나 고객, 거래처 어느 사람을 대할 때도 늘 솔직하고 진실된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간다. 말보다 행동으로써 몸소 실천하면서 사내 문화를 만들어 사람을 따르게 하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그 때문인지 레인콤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보통의 직장상사와의 관계나 직장 동료라는 느낌보다는 진정 모두가 가족 같은 따뜻함이 묻어난다. 또 회사나 경영자에 대한 강한 신뢰와 애정이 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회사명 `Reigncom(레인콤)`의 Reign은 어쩌면 양 사장의 인간관계 철학을 뜻하는 게 아닐까 한다. 이것이 그들의 성공요인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든 임직원이 함께 피땀 흘리며 쏟아 부었던 열정인 것이다. 믿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자율적인 조직문화에 그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스피드. 누구나 일등이 되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일등은 단 한 사람 뿐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매사 배수진을 치는 것도 잊지 않으며 전략적으로 준비하는 인간형이다. 짧은 기간에 눈부신 성장으로 `성공신화`라는 칭호 속에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에겐 분명 이제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양 사장은 업계를 이끄는 주역으로서 그리고 큰 형님으로서 많은 사람의 모범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의 멈추지 않는 열정으로 앞으로 또 어떤 변화의 트렌드를 이끌지 기대된다. <정리= 김민형기자 kmh204@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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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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