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을 내린 기업이 45개사에 달했다.
주요 업종의 부진한 업황이 반영된 결과로 하반기에 업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이 신용등급 하락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2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한국신용평가는 45곳, 한국기업평가는 40곳, NICE신용평가는 42곳의 신용등급을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신용등급을 올린 기업은 각각 8개, 5개, 8개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신용등급 하향조정 기업 대비 상향조정 기업의 비율은 0.18, 0.13, 0.19에 그쳤다.
신용평가사의 한 관계자는 "올해 업종별로 업황이 좋지 않은 곳이 너무 많아서 신용등급을 올릴 만한 기업이 정말 적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SK하이닉스(000660)(A+→AA-), LG이노텍(011070)(A+→AA-), 쌍용양회(003410)(BBB→BBB+) 등은 신용등급이 한 단계씩 상승해 눈길을 끌었다.
현행법상 신용평가사는 한해 실적결산이 마무리된 기업에 대해 6개월 안으로 신용등급을 매겨야 한다. 국내 기업 대부분이 12월에 결산법인들이기 때문에 일부 3월 결산법인 제외하면 지난달 말로 사실상 올해 신용평가는 마무리됐다.
업종별로는 건설·조선·정유(에너지)·철강 등 국내 주요 기간산업이면서도 경기변동의 영향을 민감하게 받는 업종들의 하향세가 두드러졌다. 철강산업은 중국의 추격에 수요부진까지 겹치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신평사 3곳이 대표적인 초우량기업으로 꼽히는 포스코의 신용등급이 'AAA'에서 한 단계 내렸다. 또 현대중공업(009540)(AA→AA-)·대우조선해양(042660)(A+→A)·삼성중공업(AA→AA-) 등 조선업, 현대상선(011200)(BB+→BB)과 같은 해운업도 세계적인 교역량 감소의 영향으로 신용강등의 불명예를 썼다.
건설업 역시 해외프로젝트의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뭇매를 맞았다. GS건설(006360)(A+→A), 태영건설(009410)(A→A-), 한신공영(004960)(BBB→BBB-) 등이 등급 하락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대규모로 떨어진 것은 신평사들이 기업들의 신용등급 평가 기준을 이전보다 한층 엄격하게 적용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동양 사태' 이후 떨어진 신용등급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기에 하반기에 도입될 예정이었다가 연기된 독자신용등급(자체신용도)도 영향을 끼쳤다. 독자신용등급은 모기업의 지원 가능성을 제외하고 자체적 채무상환능력만을 평가하는 제도다. 박진영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독자신용등급과 최종신용등급 간 차이가 크면 시장의 비난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신평사들이 둘의 차이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신용등급 하락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도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호전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2013년 이후 경기민감업종의 업황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피경원 NICE신용평가 실장은 "연초 산업별 평가를 실시할 때 긍정적으로 상향 가능하다고 본 곳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며 "'부정적' 등급 전망 혹은 '하향검토' 대상 기업의 경우 올해 2·4분기 혹은 3·4분기 실적에 따라 등급 조정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기 때문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