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5월 22일] <1703> 첫 공해소송


'영남화학은 유해가스로 손해를 본 과수농가에 322만3,929원을 지급하라.' 1973년 5월22일, 대법원 민사부가 내린 확정판결의 핵심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첫 공해소송으로 관심을 모았던 이 재판의 발단은 1967년 8월. 영남화학 울산비료공장 가동부터다. 복합비료공장은 경제개발의 상징이었으나 공해를 동반했다. 공장 인근 윤모씨의 3,000평 과수원에서는 사과나무 잎이 타고 가지가 말라 죽었다. 보상을 요구한 윤씨는 1967년 91만9,751원을 타냈으나 이듬해부터 소출이 전혀 없자 1969년 폐농하고 363만5,806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1심인 부산지법 판결은 원고 승소. '공장이 공해방지대책을 게을리했고 유해가스를 내뿜어 참을 수 없을 정도(受忍의 限度)의 피해를 과수원에 입힌 만큼 보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영남화학은 바로 항소하며 '경제'를 내세웠다. '조업과정에서 다소의 공해가 생겨 피해를 끼쳤더라도 경제건설에 따른 부득이한 것으로 국가가 보상해야 할 것'이라는 회사 측의 주장은 2심인 대구고법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 역시 '경제발전에 이바지했어도 유해가스 분출까지 적법한 것은 아니다'라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4년을 끌어온 재판에서 농가의 승소가 확정된 직후, 한국에서도 공해재판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됐지만 그렇지 않았다. 변호사들이 짭짤한 수입을 기대하며 소음과 분진 관련 기획소송을 잇따라 제기했지만 공해 관련 소송은 서울대기오염 소송 정도가 손꼽힐 뿐이다. 소송 빈도가 낮아도 공해소송은 가볍게 볼 사안이 결코 아니다. 전세계가 기후와 환경을 보전하려 강제규약을 맺는 시대다. 첫 공해판결 이후 37년은 잠잠했던 소송이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는 얘기다.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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