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당국·채권단 "증자 통한 돌려막기 안돼"… 꼼수 자구책 제동

■ 급물살 타는 기업 구조조정<br>동부그룹 알짜자산 파는 고강도 자구안<br>한진해운·현대상선 등에 가이드라인 제시


동부그룹이 시장의 예상을 크게 웃도는 3조원 규모의 자구계획안을 발표하면서 기업 구조조정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과거 기업이 마련한 자구 계획안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기업에 끌려다니던 채권단은 구조조정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도 채권은행을 통해 계열사 간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돌려막기나 주식을 담보로 한 자금 지원과 같은 미봉책보다는 알짜 자산 매각과 같은 실질적인 구조조정에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식'의 기업구조조정 방식이 앞으로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18일 금융 당국과 금융계에 따르면 동부그룹이 당초 예상보다 1조원이나 많은 강도 높은 자구책을 내놓은 데는 감독 당국과 채권은행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의 한 고위관계자는 "동부그룹의 유동성 우려를 없애기 위해 채권은행과 함께 그룹 측에 동부하이텍과 같은 알짜자산을 선제적으로 매각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청했다"면서 "STX와 동양 사태를 겪으면서 선제적인 구조조정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더욱 중요해졌고 그룹도 이를 인식하고 행동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동부그룹이 이번에 예상 밖의 고강도 자구계획안을 발표할 때 감독 당국과 채권단이 보인 모습은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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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그룹은 지난 2003년 주채권은행과 처음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고 10년간 재무구조 개선 약정 단골기업으로 인식돼왔다.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졸업하지도 않았으면서도 여유자금을 차입금 상환에 쓰지 않고 부채비율을 250%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대우일렉트로닉스(현 동부대우전자)를 인수하는 등 사업을 꾸준히 확장해왔다. 감독 당국과 채권은행의 판단과 용인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업이 짠 자구계획안을 그동안 대부분 수용해왔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동부그룹은 예전과 달리 이번 자구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수차례 감독 당국과 채권단으로부터 고강도 구조조정을 요구 받았고 결국 이를 수용했다.

이번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을 계기로 금융 당국과 채권단은 현재 재무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기업에도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 됐다.

계열사 간 유상증자나 주식을 담보로 한 자금 지원 방안이 아닌 알짜자산 매각과 같은 실질적인 구조조정에 나서라는 것이다. 동부그룹이 지난 10년간 2조원 넘는 돈을 쏟아부으며 키워온 동부하이텍을 선제적으로 팔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에 따라 재무구조 악화로 고전하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은 지금보다 더욱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두 그룹은 각각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채권단에 약 1조원 안팎의 자구계획안을 전달했지만 채권단의 반응은 냉랭하다. 실제 채권단은 이들 그룹의 자구계획안에 대해 재무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다시 제출하라고 밝힌 상황이다. 감독 당국도 채권단을 통해 이들 그룹에 대한 구조조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계열사 간 유상증자나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은 결국 돌려막기와 같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동양 사태를 겪으면서 기업, 감독 당국, 채권은행 모두 큰 수업료를 낸 셈"이라면서 "경기가 호황일 때는 사업 다각화가 유효한 경영 전략이겠지만 지금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다. 구조조정을 하는 기업은 매각가격이 좋든 나쁘든 일단 팔아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해놓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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