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동십자각] 남궁석장관의 신원

그것은 분풀이였을까, 역사 청산의 미학이었을까.지난 23일 열린 국회 IMF 환란특위의 기관보고. 그 자리에서 그는 정통부를 대표하는 장관이었다. 그의 앞자리에는 성난 얼굴로 PCS 비리의혹을 캐려는 의원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을 상대로 그는 대답을 해야 했다. 시계추를 3년전으로 되돌려 본다. 그는 PCS사업권을 따기 위해 현대와 삼성그룹이 연합한 막강 컨소시엄 「에버넷」의 대표였다. 당시 그의 앞에는 이석채 전 장관이 있었다. 또 이석채와 남궁석 사이엔 전쟁이 있었다. 온나라를 뒤흔든 「피씨에스 전쟁」이다. 그 전쟁에서 남궁석은 패장이었다. 남궁석은 「다윗한테 진 골리앗」이라는 멍에가 죄처럼 덧씌워졌다. 문민정부의 가치판단이라고나 할까. 『삼성은 통신장비나 잘 만드시오』 이석채는 그렇게 말했다. 남궁석에게는 상처를 소금으로 짓이긴 것과 같은 아픔이 남아 있었다. 다시 남궁석장관. 그는 장관의 자리에서 이른바 「PCS비밀」을 열람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 현직 장관으로서 전 장관의 정책을 재단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다. 더 이상의 아이러니가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어느 소설의 상상력도 南宮장관의 현실을 쫓아 올 수는 없어 보인다. 피해자가 마음 먹기에 따라 가해할 수도 있는. 국민의 정부와 문민정부의 뒤바뀜, 광주와 대구의 차이와도 같은. 그 긴장된 공간에서 南宮장관은 가슴이 터지듯 『특혜가 있었다』고 말해 버렸다. 『전무 채점방식때문에 에버넷이 탈락한 것을 청문회 준비과정에서 처음으로 알게 됐다』『에버넷을 0점 처리한 점수표를 보고 소름이 끼쳤다』『전무 채점방식은 이석채 전 장관이 주도했다』『창피한 일이다』『PCS선정 정책은 잘못됐다』 폭탄과도 같은 파괴력을 가진 그의 대답에 다양한 해석들이 뒤따른다. 『에버넷 대표로서 한 말』이라는 비아냥도 있다. 『소신있네』라는 추켜세움도 보인다. 『국민의 정부의 청문회에서 나올 법한 모범답안』이라는 정치적 해석도 내려진다. 그러나 그에 이어지는 뒷말은 섣부른 해석에 대한 일종의 경종이다. 南宮장관은 잘못된 정책으로 태어난 PCS회사를 「사람」으로 비유했다. 『일단 사람이 태어나면 살려야 한다. 잘못된 정책으로 태어난 기업도 살아야 한다』 PCS 청문회가 낳을 결과 혹은 목적으로도 여겨지는 이동통신업계 구조 조정과 관련, 『수술하기보다 자연 치유로 소생시켜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南宮장관이 한 말의 순서는 그랬다. 뒷말이 없었다면, 앞말은 「분풀이」로 들릴 수 있다. 거꾸로 앞말이 없었다면, 뒷말은 「변호」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잘못 태어난 기업도 살아야 한다』고 말하기 전의 『특혜가 있었다』는 말은 그가 얼마나 고심했을까를 짐작케 한다. 하기 쉬운 말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 특혜의 피해 당사자였으므로.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말이었으리라. 과거를 누르고 미래를 봐야 했으므로. 「살림」의 철학으로 신원의 감정을 승화시킨 시에서나 볼 수 있는 「포에틱 저스티스」가 삭막한 청문회장에서 구현됐다. PCS 비리의혹에 대한 「정책 청문」은 南宮장관의 특혜 시인으로 사실상 끝났다. 남은 것은 「정치성 청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정통부를 지켜보는 초점은 南宮장관「살려 나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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