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역사교과서 국정화 - 반대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교과서 국정제(國定制)는 국가가 직접 저작하거나 위탁해 제작한 교과서만을 인정하는 교과서 국가독점 제도다. 지난 1992년 11월 헌법재판소는 중학교 국어교과서의 국정제를 위헌으로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교과서의 내용에도 학설의 대립이 있고 어느 한쪽의 학설을 택하는 데 문제점이 있는 경우, 예컨대 국사(한국사)의 경우 어떤 학설이 옳다고 확정할 수 없고 다양한 견해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사실과 관점은 다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와 악의적인 왜곡은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역사 서술은 자명해 보이는 사실조차도 해석자의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기에 학생들은 다양한 견해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판단하고 교사 또는 동료들과 토론하면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출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이 필요하다.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에서 교과서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다른 관점을 배제하고 국가가 제작한 오로지 하나의 시각으로 역사를 재단할 우려가 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교과서 독점이 초래하는 문제점에 대해 우선 학생들의 사고력을 획일화·정형화하기 쉽고, 다양한 사고방식의 개발을 억제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사고방식을 수용할 수 있도록 교과서 발행제도를 개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덧붙여 국가가 직접 관여하면 편리하고 효과적일 수 있겠지만 현상의 유지를 바라는 관료적 타성에서 기인하는 교과서의 경직성을 쉽사리 시정하거나 극복하기 어렵고 고위관료나 정치가들의 견해나 영향이 강하게 작용한 경우에는 더욱 어렵다고 밝혔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념과 모순하거나 역행하는 것이라고도 봤다. 자유민주주의는 각 개인으로 하여금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결정한 내용에 무조건 추종 또는 순응하도록 하는 것보다는 자율과 참여에 의해 그들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알도록 하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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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교과서는 교사와 학생의 교재선택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그 결과 교과용도서의 개발이 지연되거나 침체될 우려가 있다. 헌재는 우리 사회의 폭넓은 생활수준의 향상과 보다 양질의 교육문화를 향수하고자 하는 국민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더 이상 교과서를 독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보였다.

교과서 중심의 주입식 교육 내지 암기식 교육을 행하기 쉽다. 교과서를 국가가 독점하면 교과서의 내용에 수록한 것은 무조건 정당한 것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또 강조할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 스스로 연구해 정답을 찾아내는 기풍을 진작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국정제도보다는 검인정제도를, 검인정제도보다는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것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이념을 고양하고 아울러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국가는 수학권의 보호와 사회공공의 이익 증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범위 내에서 교육내용에 대한 결정권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콕 집어서 지적했다.

헌법재판소를 인용한 까닭은 그 권위에 편승하고자 함이 아니다. 필자는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대한 합헌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관점에서 교과서 국정제에 대해 적정한 논거에 따라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생각한다. 결정문을 거의 직접 인용한 까닭은 ‘왜곡’의 오해를 피하고자 함이었다. 결정문 그대로 따온 것은 아니기에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직접 읽어보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입장을 정확하게 아는 길이다. 그러나 그조차 읽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다를 수 있다. 주관적인 해석의 편향성을 벗어나는 길은 다른 사람과 토론을 하면서 해석의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찾아내고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는 길뿐이다.

시민의식의 성숙함을 신뢰한다면, 또한 성숙할 기회를 갖고자 한다면 한국사 교과서를 오히려 자유발행제로 가는 게 마땅하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면 그것을 지적하고 고치도록 요구해야 한다. 균형감을 상실한 교과서가 있다면 어떤 점에서 편향인지 시민사회에서 토론하자. 물론 평화적, 논리적이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 과정이야말로 올바른 역사적 관점을 찾아가는 길이자 그 자체로 모든 시민을 위한 역사교육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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