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KB에 따르면 지난 22~23일 경기도 가평 백련사에서 열린 KB금융그룹 최고경영자(CEO)들과 임원들의 '템플스테이' 행사에서 이 행장이 1박2일의 일정을 마무리하지 않고 서울로 떠났다.
계열사의 한 대표는 "첫날 사찰예절, 스님과의 대화, 참선 등에 이어 둘째날 새벽부터 정오까지 예불·108배·명상 등의 일정이 예정돼 있었지만 이 행장이 행사진행의 절차상 문제를 놓고 이날 오후11시께 이의를 제기하다 먼저 떠났고 결국 남은 CEO들과 임원들만 참가했다"고 말했다.
당초 KB금융의 템플스테이는 21일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 행장 모두 징계 수위가 경감된 만큼 그간의 내분 양상을 극복하고 화합하자는 의미에서 마련됐다.
이날 행사는 뜻밖에도 잠자리에서 발생했다. KB금융은 당초 모든 참석자의 잠자리를 한곳으로 정했다.
그러나 지주사에서 별안간 임 회장에게만 단독 방을 배정했고 나머지 계열사 대표와 임원들은 한방을 쓰도록 했다.
이에 이 행장이 이의를 제기했다. 행사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계열사 대표 등 일부 참석자들이 이 행장에게 언성을 높였고 결국 이 행장이 자리를 박차고 떠난 것이다.
이와 맞물려 국민은행이 주 전산기 교체와 관련된 KB금융그룹 및 은행 임원들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긴장감은 더해지고 있다.
국민은행은 26일 그룹 최고정보책임자(CIO) 김재열 전무와 문윤호 IT기획부장, 국민은행 IT본부장인 조근철 상무 등 3명을 업무방해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4월 이사회를 통과한 전산시스템 교체 안건과 관련해 이들 3명이 유닉스 시스템의 잠재적 위험 요인을 알면서 이사회 보고서에 고의로 누락시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행장의 이 같은 행보는 예견됐다.
이 행장은 템플스테이에서 "금감원이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 대해 징계를 결정한 것이다. (주 전산기 교체와 관련해 문제 제기한 건에 대해 당국으로부터) 당위성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 이미 마음속으로 칼을 갈고 있었다는 얘기다.
국민은행의 한 임원은 "실수는 용납하지만 고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 행장의 원칙에 비춰봤을 때 책임질 사람은 확실하게 지게 하겠다는 심정인 듯하다"고 말했다. 이 행장은 전날 고발 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날 원칙대로 정해진 미얀마 출장길을 강행했다.
하지만 독단이라는 평도 있다. 우선 지주에 통보조차 안 했다. 고발당한 김 전무, 문 부장 모두 사후에 알았다고 전했다. 그룹 임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KB금융 고위 관계자는 "화합 차원이라면 고발하지 않는 게 맞다. KB금융 내부에 일련의 사고들이 많았는데 이럴 때 이 행장이 말하는 원칙은 독단이 된다"며 한숨지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고발당한 사람들은 주 전산기 문제가 회장이나 행장이 중징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제재심의위원회에 소명했다. 윗사람을 감싸준 것이다. (이 행장에게) 무슨 의도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외이사진에 대한 경고적 성격이 짙다는 말도 나온다. 이 행장과 사외이사들은 전산시스템 교체 건과 관련해 여러 차례 문제점들을 논의했지만 입장 차만 확인하고 소득 없이 끝났다. 결국 금감원의 징계가 확정될 때까지 논의를 보류해왔다.
하지만 사외이사진은 최근 IBM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면서 또다시 이 행장의 심기를 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