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로펌 대표와의 '솔직 토크'] 김학원 법무법인 아시아 대표변호사

"정치할때보다 변호사 일이 마음 편해요"<br>14년만에 변호사 본업 컴백 "攻·守하는 마지막장소가 법정" 대표신분임에도 직접 변론맡아<br>"院구성 갈등등 허송세월 보내는 국회는 심각한 게으름장이"일침



[로펌 대표와의 '솔직 토크'] 김학원 법무법인 아시아 대표변호사 "정치할때보다 변호사 일이 마음 편해요"14년만에 변호사 본업 컴백 "攻·守하는 마지막장소가 법정" 대표신분임에도 직접 변론맡아"院구성 갈등등 허송세월 보내는 국회는 심각한 게으름장이"일침 김홍길기자 what@sed.co.kr 김능현기자 nhkimchn@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ImageView('','GisaImgNum_2','default','260'); “지금이 오히려 편안합니다.” 법무법인 아시아의 김학원 대표변호사. 그는 14년만에 정치인에서 본업인 변호사로 컴백했다. 그는 신한국당(현 한나라당)과 자민련 등을 오가며 내리 3선을 할 정도로 관록이 쌓여 변호사라는 직함이 어색할 정도다. 4선 도전의 의지를 불태우며 지난 4ㆍ9총선에 출마했지만 충청권에서 선전한 자유선진당에 밀려 낙선했다. 그러나 그는 14년만에 모처럼 맞은 휴식시간을 즐기며 재기를 노리고 있다. ◇회사 상사 권유로 시작한 사법시험= 김 대표의 집안은 판검사가 수두룩 하다. 5촌이내만 따져도 판사만 6명에 달할 정도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법조집안이다. 그런데 김 대표는 집안분위기와 달리 대학졸업 후 곧바로 기업에 취직했다. 대학때 사법시험을 봤지만, 매번 고배를 마시자 기업행을 택한 것이다. 첫 직장은 현대중공업. 그곳에서 그는 6개월만에 대리로 승진했고, 남들이 4~5년씩 걸리는 과장자리를 1년만에 꿰찰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그때 직속 상사 한명이 김 대표를 불러 “회사에서 썩히기에는 아까운 실력”이라며 사법시험을 권유했다. “3년동안 (공부)해서 안되면 다시 받아주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김 대표는 이후 이를 악물고 공부에 열중했다. 당시 첫돌이 갓 지난 아이와 부인은 처가로 보내 친정살이를 시켰다.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공부를 한 끝에 그는 11개월만에 시험에 합격했다. 변호사 자격증이나 따 두자는 생각으로 시험을 봤는데, 성적이 17등으로 나왔다. 사법연수원 졸업성적은 상위권인 7등이었다. 그래서 그는 뜻하지 않게 샐러리맨에서 판사로 새로운 길을 가게 됐다. ◇개혁성향으로 발탁돼 정치입문= 그가 정치권으로 발을 들여 놓는 과정 역시 드라마틱하다. 그가 판사생활 10년차 즈음에 변호사로 개업했다. 판사 월급이 박봉인데다, 대학 동기들이 훨씬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게 부러워 판사보다는 돈을 잘 벌 것 같은 변호사를 택한 것이다. 그런데 변호사 개업을 한 지 한달도 채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 왔다. 당시 여당이던 민자당측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온 것.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망설임도 없지 않았다. 약속시간에 시청앞 프라자호텔에 나가자 문정수 이원종 이인제씨 등이 나와 있었다. 이들은 김 대표를 영입하고 싶은데 서울 성동을 지역하고 서초갑 지역 중 한 곳을 선택해 달라고 요청했다. 성동을 지역구의 야당주자는 당시 거물급인 조세형씨가, 서초갑은 차기 대선후보로 떠오르고 있던 박찬종씨가 버티고 있었다. 그는 “이왕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니 제대로 한번 해 보자”며 성동을 지역을 택했다. 주위에서는 “무모한 짓”이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94년 성동을 지구당위원장을 맡아 2년뒤 총선을 치뤘다. 결과는 김 대표의 압승이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될 줄 알았던 선거는 놀랍게도 성동을의 거의 모든 동에서 김 대표가 이긴 것으로 나왔다. 선거결과가 너무 의외라 당시 유력 일간지 1면에 대대적으로 실리기도 했다. ◇14년만에 변호사 본업으로 컴백= 그는 “지금이 오히려 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 신분일때는 수시로 각계에서 정보가 들어오는 데 머리만 아프고 복잡해 진다”며 “정보에 어두우니 마음이 편안할 수 밖에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서운함도 남아 있었다. “비록 선거에서 떨어졌지만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 두번은 더 출마할 생각이 있다. 오랜만에 여당이 돼 지역사회를 위해 할 일이 많았는데…” 그는 재기이후 계획을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경제관계법을 대대적으로 정비해 보고 싶다”, “이중구조의 지방자치단체 구조를 단층구조로 전면 개편해 저비용 고효율 구조로 만들겠다” 등등. 그는 여전히 ‘국회의원 김학원’ 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번 낙선을 계기로 좀더 멀리 떨어져서 세상을 볼 수 있게 됐다”며 “재충전 기회로 생각하고 당분간은 변호사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 중요한 정치를 많이 했던 선배들도 모두 한번쯤 실패를 맛보고 쉬다가, 나중에 복귀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느냐”며 “바둑도 옆에서 훈수를 두면 수가 더 잘 보이는 법”이라고 웃었다. ◇“도덕성 만큼은 자신있다”= 14년의 정치생활은 그에게 무얼 남겼을까. 그는 “정치를 하면서 정말 열심히 하려고 했고, 도덕성 부분에서는 모범적인 정치인이 되려 했다”고 자평했다. 14년간 손떼가 묻은 지역구 사무실을 정리하면서, 직원들에게 일일이 퇴직금을 나눠줬다. 그러다 보니 정작 김 대표 호주머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아내로부터 “12년 국회의원 한 사람이 빈손으로 올 수 있냐”는 구박아닌 구박도 받았다. 그러나 김 대표는 “정치를 처음 시작하면서 한가지 약속만은 하지 않았냐. 어떤 일이 있어도 집만은 팔지 않겠노라고. 결과적으로 재산을 크게 불리지는 못했지만 애초 약속은 지킨 게 아니냐”며 아내를 달랬다고 한다. 그는 정치인 가운데 스캔들이 없기로도 유명하다. 그는 “정치 지도자가 되려면 세가지 능력이 필요한데, 전문성과 도덕성, 그리고 부지런함”을 꼽았다. 특히 그는 “정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도덕성”이라며 “도덕성은 남에게 잘 보이게 하려해도 절대 숨길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시아는 매우 성실한 로펌”= 그는 아시아의 강점에 대해 “성실하게 일을 해 주는 것”을 꼽았다. 그는 변호사를 영입할 때도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성실성이다. 그래서인지 아시아는 의뢰인들로부터 “참 열심히 성실하게 일을 처리해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대표 역시 대표 신분임에도 중요한 사건의 경우 직접 법정에 나가 변론을 하고 있다. 주위에서는 직접 법정까지 나갈 필요가 있느냐고 말렸지만, “공격과 방어를 하는 마지막 장소가 법정인데 법정 분위기를 모른 채 어떻게 공격과 방어를 제대로 하겠느냐”며 현장을 고집했다. 그는 법정에 나가면서 법원의 변화에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보였다. “과거에는 법원이 상당히 권위적이고 변호사들도 대기실에서 무작정 기다려야 했는데 지금은 예측이 가능하고 기다리는 시간없이 바로 재판에 임할 수 있다”며 만족해 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되지 않았다면 아시아를 더 큰 규모로 키울 욕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권에 몸담으면서 아시아를 돌볼 시간적 여유가 없다 보니 변호사 수를 10여명으로 유지하는 게 최적인 것 같아 지금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덩치를 확대할 계획에 대해서는 “생각을 좀 해 봐야겠다”며 여운을 남겼다. ◇“여야 모두 정도 벗어나 있다”= 국회의원 출신 변호사여서 그런지, 정치권에 대해 할말은 했다. 최근의 여야간 갈등에 대해서는 “과거에도 여야간 충돌은 있었지만, 요즘처럼 상대방을 서로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중상모략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함정에 빠뜨리려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원구성 갈등으로 허송세월하고 있는 국회에 대해서도 “심각한 해태(게으름)”라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국민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비유가 적절한지는 몰라도 형제간에 싸우다가도 아버지가 오면 무서워서라도 싸움을 그친다. 국민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에라도 서로 양보해서 결론을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부자 내각’ 논란 등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독설을 쏟아냈지만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는지 마지막에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요청했다. 로펌 대표로 화려하게 컴백한 김 대표의 4년 후의 모습이 새삼 기대된다. ■ 법무법인 아시아는 재개발·재건축 분야 30여개 조합 대리 맡아 법무법인 아시아는 지난 1997년 김학원 대표와 유영혁 대표를 필두로 각 분야의 전문 변호사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아시아는 민·형사 사건뿐 아니라 행정·특허·조세 개인파산·면책, 개인회생, 재개발·재건축 등 주요 분야를 망라하는 종합적인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재개발·재건축 분야에서는 30여개의 조합을 대리했으며, 법률상담실 코너를 마련해 온라인 법률 상담도 실시하고 있다. 김학원 대표가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때는 주요 입법활동에 대한 자문을 수행하기도 했으며, 설립 이후 10여년간 각종 소송 업무를 잡음없이 처리해 작지만 믿을 수 있는 로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대표는 "우리 로펌의 최대 장점은 바로 성실성"이라며 "법률적으로 복잡한 사건은 모든 변호사들이 모여 토론을 거쳐 해결하는 최고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 약력 ▦1947년 충남 청양 출생 ▦1965년 공주사대부고 졸업 ▦1970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83년 사법시험 25회 ▦1997년 법무법인 아시아 설립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1998년 건국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2001년 자민련 원내총무 ▦2002년 국회 평창동계올림픽유치특별위원회 위원장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자민련 대표 ▦2006년 한나라당 최고위원 ▦2008년 법무법인 아시아 대표변호사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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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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