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약과 함께 한세기 ‘최고제조사’/동화약품 오늘 창립 100돌

◎활명수·등록상표 최장수기록 보유/월급제 처음 도입/이젠 신약개발로 「최초신화」 재도전동화약품이 25일로 창립 1백주년을 맞는다. 두산그룹, 조흥은행에 이어 국내 3번째다. 그러나 제조회사로는 국내 최초며 제약회사로도 처음이다. 동화약품의 역사는 기네스북에 오른 기록에서 잘 알 수 있다. 한국기네스협회는 지난해 동화약품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제조회사 및 제약회사라고 인정했다. 또 최장수의약품 활명수, 가장 오래된 상표 부채표등 4개 부분에 대해 인정서를 줬다. 동화약품의 역사는 1897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궁중 선전관이던 민병호 선생이 「좋은 약을 만들어 일반 국민에게 보급한다」는 정신으로 활명수를 만들었고 이를 토대로 아들인 민강씨가 동화약방을 설립했다. 동화는 창업초기에 활명수, 인소환 등을 제조해 교회를 통해 보급하는 등 소규모로 운영됐다. 이후 양약의 대중화에 박차를 가해 86종의 의약품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1910년 상표 부채표와 수십종의 의약품을 특허등록하며 제약업체로서의 체계를 갖췄다. 1915년 때맞춰 열린 조선대박람회를 계기로 동화의 의약품들은 전국에 알려졌다. 민강씨가 작고한 뒤 1937년 윤창식 선생이 회사를 인수했다. 윤선생은 동화의 창업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기업과 개인을 구분해 최적임자에게 경영을 맡기는 등 경영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며 동화를 키웠다. 한동안 위축되던 동화는 이때부터 다시 활기를 찾았다. 해열진통제인 노바피린 등 당시로서는 최신의 치료의약품을 생산했으며 만주안동, 봉천, 북간도 등으로 시장을 확대했다. 사세는 이후 계속 커져 1938년 만주지점을 설치했고 1942년에는 만주안동에 분공장을 지었다. 해방과 6·25를 지나면서 동화는 다른 국내 제약업체와의 경쟁에 나선다. 동화는 이때부터 전통적인 기업이 놓치기 쉬운 변화와 진취성에 눈을 뜨며 본격적으로 현대식 생산시설을 보강하기 시작했다. 66년 순화동의 본사와 공장을 신축하며 생산공정을 자동화했다. 72년에는 위장운동촉진제인 메토클로프라미드와 항균제 트리메토프림을 자체 기술로 합성하는데 성공했고 같은해 생산시설과 제조공정을 현대화한 안양공장을 완공, 전환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78년에는 제조업체로서는 국내 최초로 생산직의 모든 사원을 대상으로 월급제를 실시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임금을 시간급으로 계산했다. 84년에는 스위스 산도사사와 합작해 한국산도스사를 설립했으며 경영다각화의 일환으로 93년 의료용품사업, 95년 식품사업에 참여했다. 아직도 동화약품의 최대 생산의약품은 활명수다. 「목숨을 살리는 신통한 약」이라는 뜻의 활명수는 급체, 주체, 과음, 과식, 소화불량의 특효약으로 나온지 1백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액제소화제시장에서 판매 1위를 차지하고 있다. 1백년동안 약 70억병이 팔린 것으로 동화측은 추산한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활명수 한병(6백㏄) 값은 20전이었다. 이 돈이면 두사람이 당시 대중음식이던 설렁탕 한그릇(5전)씩 놓고 막걸리 한잔을 마실 수 있었다. 지금은 75㏄ 한병에 5백원이다. 동화는 93년 국내 최초의 퀴놀론계 항균제인 DW116을 개발해 99년 상품화할 계획이다. 또 95년 특허출원한 간암치료제 DW166HC는 98년께 상품화할 방침이다. 이밖에 카바페넴항생제 등 5개의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중이다. 매출액의 5%선인 70억원을 연구분야에 투자하고 있는 동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약을 개발했듯이 98년 세계최초의 신약 개발을 목표로 또다른 1백년의 첫발을 내디뎠다.<한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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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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