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탈세 온상' 남유럽 지하경제, 유럽 재정위기 더 키웠다

정부 통제력 약한 그리스·伊등 전산업에 불법 이민자들 판쳐<br>稅안걷히고 실업 급여는 지급… 돈줄줄 새나가 나라 곳간 바닥<br>노동장벽 낮추고 규제 완화등 법·제도 정비 통해 양성화해야


#1 유럽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이탈리아 북부 투스카니 지방에 위치한 프라토(prato) 시 당국은 차이나타운을 급습했다. 프라토 차이나타운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의류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중국 불법이주자들은 이곳으로 대거 넘어와 '메이드 인 이탈리아'제품을 만들어 팔았다. 하지만 불법이주자들의 세금이 프라토시 곳간으로 제대로 들어올 리 없었다. 지난 5년간 프라토에서 중국으로 빠져나간 돈만 50억유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시 당국은 사업장 320곳을 적발하고 부동산 144곳과 기계 6,250점을 압수했다. #2 스페인 공식 실업률은 21%에 달한다. 백수들만 49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면 연일 총파업 시위를 벌이는 그리스처럼 나라가 뒤집어 질 법도 하다. 하지만 수도 마드리드 거리에서 격한 시위는 찾아볼 수 없다. 스페인 경제에 깊이 뿌리내린 지하경제가 고용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공식 실업률이 8% 정도면 완전 고용이 달성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세수에 구멍이 생긴 스페인 정부는 긴축 재정뿐만 아니라 지하경제도 적발해야 하는 이중고에 빠졌다. 최근 유럽의 재정위기가 거대한 지하경제로 인해 한층 심화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하경제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공식 경제'로 세금망을 피해가기 쉬워 유럽 재정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중앙정부 통제력이 약해 불법 이민자들이 대거 몰리는 남유럽에서 그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다. 뒤늦게 사태를 직시한 유럽 정부는 벌금을 물리고 강력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지하경제 숨통을 끊으려면 노동 시장 규제를 완화하는 등 제도를 손질해 지하경제를 양지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재정위기 한 몫 거든 지하경제 =그 동안 유럽 언론들은 유럽 재정위기의 원인으로 방만한 재정집행, 무리한 단일 통화 도입 등을 주로 지적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지하경제야 말로 숨은 '복병'이었다고 말한다. 요하네스 케플러 대학의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경제학 교수가 유럽 31개국의 지하경제 규모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재정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국가의 경우 지하경제 규모도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스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하경제 규모가 25%에 달해 전통적 지하경제 대국인 동유럽의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또 다른 재정위기국인 이탈리아는 21.8%, 포르투갈은 19.5%, 스페인은 19.2%를 기록하며 모두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지하경제가 커질수록 재정위기에 봉착하는 것은 필연적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지하경제 규모가 커지면 정부는 세수 확보에 애를 먹고 이에 따라 '공식 경제'로부터 세금을 더 쥐어 짜낼 수 밖에 없다. 반면'공식 경제'는 세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 더 지하경제로 숨어들어 간다. 결국 지하경제가 재정위기와 또 다른 지하경제를 초래하는 악순환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중앙정부 통제 부족한 남유럽 심해= 특히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등 유독 남유럽에서 지하경제가 극성인 것은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하고 지방분권 성향이 강해 '양지의 경제'가 제대로 뿌리내릴 토양이 척박하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남유럽은 전통적으로 법의 통제력이 약하다"며 "또 이탈리아는 남북 지역 경제 격차로 지역감정이 존재하고 스페인은 지방 독립 운동 활성화로 중앙 정부 통제력이 약해 지하경제가 자리 잡기에 좋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스페인의 경우 중앙정부의 힘이 미치지 않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건설, 농업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불법이민자 고용이 보편화 돼 세금을 걷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또 지하경제 취업자들이 자신을 실업자로 등록해도 마땅한 처벌 수단이 없어 정부가 이들에게 고스란히 실업급여를 지급해야 하는 지경이다. 세수는 줄고 지출은 늘어나니 국고가 줄줄 샐 수 밖에 없다. 거래 방식도 문제다. 남유럽 국가에서는 주택거래부터 의료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현금 거래가 보편화돼 세금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가기 쉽다. ◇제도 정비로 지하경제 '양성화' 해야= 남유럽 정부는 지하경제를 뿌리뽑기 위해 뒤늦게 '검은'경제에 철퇴를 가하는 중이다. 지난 4월 스페인 의회는 지하 경제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불법 고용을 자행하는 고용주에 벌금을 늘리는 법을 승인했다. 지난 5월 시범 케이스로 직원 고용 보험을 지불하지 않은 중고차 수리업체 타예레스 마코르에 벌금 13만 유로를 물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철퇴를 내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지하경제를 일일이 단속하는게 불가능하고 지하경제는 규제를 가할수록 더 부풀어 오르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제도 손질을 통해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데 주력할 것을 주문한다. 마드리드 소재 IE 비즈니스 스쿨의 게일 아이아르 경제학 교수는 "지하경제 비중을 줄이려면 법인세 비중을 낮추고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를 취해 고용주들이 굳이 지하경제로 숨어들 필요가 없게 만들어야 한다 "고 말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라프도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세수 기반을 확보하도록 고민해야 한다"며 "따라서 고용 규제와 노동 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현금 거래 단속과 사법 감시 시스템을 강화해 지하경제를 양지로 이끌어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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