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제한적 개헌' 검토 필요성 제시로 개헌논의에 대한 정치권의 복잡한 셈법이 16일 드러났다. 이 대통령이 개헌 검토 범위를 정파적 이해가 민감하게 얽혀 있는 권력구도로 제한한 것이어서 정치권은 개헌논의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여야는 이날 개헌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이에 따라 동력이 약해 지지부진하던 정치권 개헌논의가 일단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대통령의 개헌 발언은 정치의 중심에 서겠다는 선언"이라며 "대통령과 행정부가 국가현안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국회가 헌법에 주어진 역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정치권의 개헌논의를 강조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국민적인 공감대는 미흡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개헌 논의는 (내년 6월) 지방선거 이후 이뤄지는게 온당하다"면서도 "이른 시간 안에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 (민주당이) 어떤 안을 갖고 있는지 내놓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그러나 여야가 개헌의 시기와 폭 등에 대해 팽팽히 맞서고 있어 국회 개헌특위를 통한 공식적 개헌 논의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이날 '내년 상반기까지의 개헌 완료'를 목표로 개헌 논의의 본격적인 착수를 선언하며 대대적인 개헌 여론몰이에 나섰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제 국회에서 개헌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이 됐다"면서 "의원총회 논의를 거쳐 당내 개헌특위를 구성할 것이며 국회 개헌특위가 구성되면 권력구조 중심의 개헌문제를 다뤄가겠다"고 밝혔다. 특히 안 원내대표는 "내년 상반기에는 반드시 개헌이 완성되도록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반면 야권은 이 대통령과 여권의 개헌 움직임에 대해 국면전환의 의도가 숨어 있는 것 아니냐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민주당은 개헌논의 시기를 여권 주류 측의 '즉각 논의 착수 내년 상반기 완료'와 달리 '내년 지방선거 이후'로 재확인했다. 정 대표는 "지금 대통령의 말만 있고 한나라당의 개헌안은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이슈를 주도하겠다는 욕심만 있지 실체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자기 의중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자유선진당은 개헌논의 폭과 관련, 권력구조라는 원포인트에 국한하지 말고 기왕 개헌을 하려면 기본권ㆍ영토조항 등을 포함해 전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회창 총재는 "소폭으로 하려면 차라리 건드리지 않고 놔두는 것이 낫다"며 "개헌을 하려면 광폭으로 해야 한다"며 '제한적 개헌'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한나라당 내 친박근혜계도 현재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히는 박 전 대표의 위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개헌논의 속도조절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개헌을 둘러싼 여야 간 신경전뿐 아니라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 간 치열한 논쟁을 예고한 것이다.
친박근혜계의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은 "정파적 견해로 개헌논의가 나와서는 곤란하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 제안을 우리가 반대했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