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이후 사진과 조각, 드로잉과 글쓰기 작업을 통해 미술이 시각의 영역을 넘어 문학과 사상의 세계로 확장되는 한국의 개념적인 미술을 주도해 온 작가 안규철(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교수)은 익숙한 사물을 낯선 상황에 배치하여 일상적인 삶의 이면을 드러내는 개념적인 작품을 발표해왔다.
1999년 개인전 이후 5년만에 `안규철-49개의 방`개인전이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 기획전으로 열리고 있다. 신작중심의 설치 작품 6점과 드로잉, 모형연작등 8점으로 부조리한 사회적 모순을 우화적, 만화적 감수성으로 공간화 해 온 작가의 독자적인 예술세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선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벽면작업을 보자. 멀리서 보면 일정한 그림의 반복작업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보면 두 사람이 만나 악수를 하고 한 사람이 모자 쓴 사람을 잡아먹는데, 모자만 덩그라니 바닥에 떨어져 있다. 기괴한 내용이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만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냈다. 약육강식의 살벌한 인간관계에 대한 사유가 있다. 함께 전시되는 모자는 잡아먹힌 사람이 떨어뜨린 것으로 간주되며 이는 이야기와 물증 사이의 진실여부를 묻는 또다른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럼 이러한일이 실제 있었던 일인가?
`49개의 방`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선보이는 신작들은 작가의 관심사와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관객들의 참여을 유도한다. `상자속으로 사라진 사람`의 작품은 눈앞에 놓인 작은 상자를 통해 현실세게로부터 도피하는 방법이 13장의 드로잉 텍스트에 자세히 적혀있다. 3개의 긴 헝겊터널을 넘어 상자속에 들어가 상자 뚜껑을 닫는 방법으로 현대인의 현실탈주욕구를 반영했다. `바닥없는 방`은 실재의 아파트 공간이 그대로 재현되었지만 허리 아래의 벽과 바닥은 결여돼 있다. 현대인의 뿌리내리지 못하는 삶을 직접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규격화된 우리 아파트가 머물지 못하는 곳은 아닌지 묻고 있다.
`112개의 문이 있는 방`은 네면이 모두 여닫을 수 있는 문으로 구성된 49개의 방은 폐소공포증을 불러일으킬 만큼 여러겹으로 중첩됐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침입에 무방비로 노출된 방이다.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공간은 네트웍에 연결되어 감시하고 감시당하면서도 파편화된 관계만을 유지할 뿐, 전체를 조망할 수 없는 현대사회를 의미한다. 전시는 4월25일까지다
한편 13일 오후 2시에는 작가와의 대화가 마련돼있고 전시작품 `그 남자의 가방`에 대한 이야기를 관람객 스스로 만들어내는 관람객 참여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최근 현대문학에서 그의 산문집 `그 남자의 가방`이 출간됐다. (02)2259-7781
<박연우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