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는 벌써부터 오는 2016년 대선에서 밀어줄 쓸 만한 후보를 찾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버락 오바마처럼 또다시 반월가 성향의 대통령이 나왔다가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5년간의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현재 월가는 공화당의 크리스 크리스티(사진 왼쪽) 뉴저지주지사와 힐러리 클린턴(오른쪽) 전 국무장관을 놓고 주판알을 튀기고 있다.
◇대공황 이후 정치권과 갈등 최고조=오바마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월가에서 모은 정치자금은 현직 대통령임에도 600만달러에 그쳤다. 1997년 첫 상원의원 선거 때 지원받은 1,600만달러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액수로 서로 혐오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월가가 공화당 내에서 원군을 마련한 것도 아니다. 공화당도 미 국민 대다수의 월가에 대한 반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로이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월가 개혁과 금융권에 대한 정부 처벌이 아직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공화당 내 극우세력인 티파티는 오바마 정부의 금융권 구제금융이나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양적완화가 월가 은행가들의 배만 불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월가 역시 티파티의 독선 탓에 지난해 10월 초 연방정부 셧다운(정부 폐쇄) 사태가 발생했다며 공화당 내 중도파 후보에게 자금을 몰아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뉴욕 은행가들이 양당 모두에 버림을 받기는 대공황 이후 처음"이라며 "월가는 워싱턴 정가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고 전했다.
◇크리스티 대 클린턴=하지만 공화당 내 그 누구도 월가의 지원 없이는 강력한 대선주자가 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셧다운 사태를 주도해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이 최근 뉴욕으로 날아가는 등 구애 공세를 펴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현재 월가가 가장 선호하는 대선후보는 크리스티 주지사다. 2011년 7월 40여명의 월가 인사들이 맨해튼에 위치한 한 회원제 테니스클럽에 크리스티 주지사를 초청해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다.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크리스티 주지사는 신뢰할 수 있는 리더이며 (월가 규제 같은) 편협한 시각에 영합하지 않을 것"이라며 노골적인 지지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특히 크리스티 주지사의 본선 경쟁률이 클린턴 전 장관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월가 인사들이 고무돼 있다.
폴 라이언(위스콘신) 하원의원도 최근 2014~2015년 예산안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월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면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의 경우 월가 입장과 달리 이민법 개혁안을 반대해 거리가 멀어진 상태다.
월가가 크리스티 주지사 다음으로 선호하는 인물은 클린턴 전 장관이다. 뉴욕주 상원의원 출신으로 월가의 많은 인사들과 친분이 있고 금융에 대한 시각도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월가는 클린턴을 지원했다가 오바마의 사례처럼 뒤통수를 맞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실제 클린턴 전 장관은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소득불평등 개선을 부쩍 강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월가 개혁의 기수'이자 클린턴의 대항마인 엘리자베스 워런(메사추세츠) 민주당 상원의원은 월가에 최악의 악몽이다. 이미 불출마 의사를 밝혔지만 클린턴이 중도 하차하면 민주당 핵심 당원들로부터 출마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뉴욕=최형욱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