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화제의 골프인] 유미하 덱스타코리아사장

덱스타 코리아 유미하사장.건축설계사로 이름날렸던 대전 유지의 막내딸,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MBC아나운서 시험 합격, 외과병원장 부인. 그녀는 지난 96년까지만해도 이처럼 화려한 이력을 감추고 평범한 2남 1녀의 어머니로 살았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세계최고의 골프화」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유미하사장이 골프에 손을 댄 것은 지난 89년. 외과병원을 하는 남편의 권유로 채를 잡은게 시작이었다. 필드에도 나갔다. 핸디 20정도의 잘 치지 못하는 실력이지만 자연을 만끽하며 동반자들과 담소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라운드에 나설때면 늘 불만이 있었다. 편한 신발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옷에 맞춰 신발을 고르면 라운드 내내 발이 불편하고, 편한 골프화를 신고 나서면 왠지 옷에 어울리지 않는 것같아 마음이 불안했다. 그녀의 뇌리에는 언제나 「편하고 예쁜 골프화는 없을까」하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 미국에 있는 친지의 소개로 우연히 신발 전문메이커인 덱스타 관계자들을 알게됐고 한국에 총판을 냈다. 「덱스타 코리아」다. 그녀는 회사 설립직후인 97년 5월 생전 처음 국내 유명회사에 납품계약을 하러 갔던 때의 느낌을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유통업체와 판매계약을 맺기 위해 들고 간「덱스타」골프화가 미국 유명제품이긴 하지만 상대방이 품질과 납품조건 등을 워낙 꼼꼼하게 따지는데다 생전 어디가서 사업이야기를 해 본적이 없어 진땀을 흘렸던 것이다. 협상하면서 한나절 물한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긴장했던 유미하 사장은 결국 「솔직함」하나로 계약을 성사시켰다. 사업에 관한 모든 것을 설명하니 그쪽에서도 호의적인 의사를 표명해 결국 파격적인 대우로 어려운 납품대행계약을 맺었던 것이다. 『그 회사 문을 열고 나오는데 세상이 정말 다 내 것같더라구요. 머리 얹으러 간 날 초긴장속에 휘두른 첫 티 샷이 멋지게 페어웨이에 안착한 느낌이었어요』 유사장은 결코 욕심을 부리거나 무리하지 않는다는 신조로 사업을 한다. 그저 첫 계약때처럼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 품질관리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그런 노력은 「믿을만 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고 사업 시작 첫해 20만달러 수주만 하면 성공적일 것이라는 본사의 예측을 깨고 50만달러 이상을 들여다 팔았다. 미국 덱스타 본사로부터도 깊은 신뢰를 얻어 유사장은 올해부터 로열티 하나 없이 모자 및 소품 제작판매권을 따냈다. 유사장은 결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덱스터」판매를 대행하면서 그녀는 우리 브랜드로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신발산업의 메카인 부산을 수시로 드나들며 제품을 생산할 공장을 물색했다. 공장을 찾은 뒤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금형을 만들었다 버렸다. 전세계 여성골프화 500여컬레를 일일이 직접 신어보며 좋은 점을 벤치마킹했다. 『내가 신어 불편하면 아무도 사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완벽한 제품을 만들 때까지는 생산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드디어 땀을 흘린 보람이 있었다. 이달 중순 첫 옥동자 「피가로(IPGARO)」를 선보인다. 『주말골퍼인구가 줄잡아 200만명이고, 이 가운데 여성골퍼가 5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모두 「피가로」를 신도록 한다는게 제 소망입니다. 물론 「피가로」는 한국여성골퍼만을 노린 신발은 아닙니다. 전세계 여성골퍼들이 찾도록 키워 나갈 생각입니다.』 유미하사장의 당찬 포부다. 그녀는 『사업은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면서 『이제 피가로를 일본은 물론 미국 덱스타 본사로 역수출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진영 기자 EAGLE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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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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