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허브 코리아'의 전제조건

한국을 동북아시아 비즈니스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허브 코리아(Hub Korea)' 방안이 정부를 중심으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한국이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강한 산업기반을 보유하고 있다는 장점을 활용, 생산과 교역, 물류와 서비스의 중심이 되자는 계획으로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로 더욱 강한 힘을 받고 있는 듯하다. 산업 공동화가 우려되는 시점에 국가의 장래를 위해 꼭 발전시켜야 할 장기 비전이 될 것이다. 정부의 허브 코리아 계획은 마스터 플랜을 갖고 차근차근 진행하면 달성할 수 있고 기대효과도 크리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지난 70년대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시가 중남미 지역의 허브를 목표로 도시계획을 세웠고 조지아주 애틀랜타시도 미국 동남부 지역의 허브를 목표로 10년 이상 꾸준히 노력, 상권 확대와 고용 증대 등을 통해 지역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해왔다. 아시아에서도 홍콩이나 싱가포르가 허브로서 성공한 좋은 예다. 그러나 로마가 하루아침에 건설되지 않았듯이 허브 코리아도 몇년 안에 당장 달성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해외진출을 위해 각국에 지사를 설치하고 있고 다시 몇개의 국가군을 묶어 지역본부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업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에 진출해 있는 외국기업의 지사는 대개가 동남아시아 본부 산하에 있게 된다. 해외지사들은 본사의 지시를 받기보다는 지역본부의 지시를 따르게 돼 있고 지역본부가 관할지역 내 각국 지사간 조정과 협조를 통해 사업수행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다국적 기업의 지역본부가 한국에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홍콩이나 도쿄에 있고 간혹 싱가포르에 있다. 따라서 다국적 기업들에서 한국은 지역본부 산하의 한 나라로 편재돼 있어 상대적으로 위상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 다국적 기업에 한국 관련 사항을 문의하거나 협조를 부탁할 때 미국 본사에서는 한국 관련 업무가 소관이 아니므로 지역본부가 있는 홍콩이나 도쿄에 알아보라는 대답을 듣게 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우리는 '허브 코리아' 정책을 추진하면서 해외 다국적 기업들이 지역본부를 한국에 두지 않고 있다는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허브 코리아 정책 추진에 앞서 한국 경제의 기본 틀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국제적 기본 여건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하루빨리 누구나 자유로이 기업을 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장애요소는 세제와 회계문제다. 한국에서 고소득자에게 부과하는 세율은 홍콩 등보다 높아 고위직 경영자들이 설사 세금을 회사가 부담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에 살면서 기업활동을 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회계의 투명성 문제는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아직 남아 있는 과제가 크다. 두번째로 노동시장의 경직성 문제다. 지역본부에는 인사ㆍ지사관리에 필요한 본부요원들이 상주하는데 이들의 채용과 해고가 용이하지 않은 한국을 선호할 이유가 없다. 필요할 때 회사규모를 늘리고 어려울 때 규모를 줄일 수 있는 자유가 없는 나라에 지역본부를 설치할 까닭이 있겠는가. 세번째로 외환규제 문제를 들 수 있다. 정부는 외환규제를 거의 다 풀었다고 말하지만 외국기업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한국의 외환 자유화가 아직 멀었으며 외국기업이 편안하게 여기는 단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할 만큼 했다고 말하지만 해외 기업인들의 이해는 한국 사람들의 생각과 큰 괴리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넷째, 정부의 간섭과 선진경제에 대한 이해이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많이 줄어들었으나 아직도 상당한 규제가 남아 있다고 외국기업들은 인식하고 있다. 분쟁이 발생할 경우 판ㆍ검사들이 국제 경제법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끝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 많이 늘어나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력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시장수요에 비해 공급이 태부족인 실정이다. 학교와 연수기관이 영어교육의 질을 높이고 보다 실질적인 어학교육을 하도록 노력하고 국민 개개인이 어학능력 개발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영어는 미국과 영국의 언어가 아니라 세계화 속의 글로벌 언어임을 상기해야겠다. 허브 코리아의 큰 비전 실현은 국민 모두의 노력으로 가능하다.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면 어느 기업이든 찾아오게 마련이다. 좋은 환경을 먼저 만들어 지역본부를 유치하면 아시아 지역의 허브 기능도 개발될 것이다. /김영만 주미 한국상의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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