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6월 24일] 노아와 방주

성서 창세기에 보면 ‘노아’라는 인물이 나온다. 이 사람은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했다. 하나님은 지상 인간들의 온갖 악행에 기가 막혀 사람과 새나 짐승 등을 만든 것을 후회하고 이들을 모두 없애기로 결심하신다. 단지 노아와 그 가족, 그리고 각종 동물들 한 쌍씩만 살리기로 하고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 것을 명하신다. 방주는 길이 137m, 폭 22.8m, 높이 13.7m로 지금의 4,500톤 규모의 꽤나 큰 배로 추측된다.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속에 방주가 완성되고 노아와 그 가족, 모든 동물 한 쌍씩이 방주에 들어가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 비는 40일을 밤낮으로 퍼부어 세상을 뒤덮는 홍수가 되고 육지가 150일 동안 물에 잠기게 한다. 결국 방주 속의 노아 가족과 피신한 동물들을 제외하고 지상에서 숨쉬는 모든 것이 멸망하게 된다. 노아는 방주생활을 하는 동안 수천 종의 동물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이 종을 이어갈 생명임을 알고 작은 새 한 마리도 정성을 기울여 돌보았을 것이다. 선장으로서 노아가 편견을 가지고 특정 동물에게만 신경을 썼다면 일부 종은 방주 안에서 멸종됐을 것이다. 노아는 방주를 안전하게 운항해 물이 빠진 세상에서 다시 생명을 이어간다. 노아의 방주가 생각나는 때다. 나라 밖에서 물난리 소식이 전해지고 예년보다 장마전선이 빨리 와서가 아니다. 정작 장마나 홍수보다 더 우려되는 상황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의 순수함은 찾아볼 수 없고 이미 나라 안이 온통 자기들만의 주장으로 시끄럽다. 일부는 폭력을 마다치 않고 자기의 뜻과 맞지 않으면 비난과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으로 완성된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주장만이 받아들여지고 승리하는 것은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세계 여러 나라가 부러워하는 찬란한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에게 유독 대화하고 타협하는 문화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늘 싸우고 갈등하고 힘으로 상대방을 억누르려 한다. 이제는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는 문화를 키워나가야 할 때다. 검은 폭풍우 속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방주를 안전하게 운항할 ‘노아’는 편견을 버리고 ‘대화와 타협’에 나서야 하는 우리들 자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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