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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현대重·삼성중공업
세계 유일 건조능력 내세우며 수익성 보다 일감따내기 급급
실제론 경험·능력 부족 드러내 건조계약 변경·공사 지연 일쑤
기자재도 80%이상 수입에 의존… 손실 눈덩이처럼 불어나 재앙으로
대우조선해양이 올해 2·4분기 조 단위의 대규모 적자를 예고한 가운데 삼성중공업도 최대 1조원이 넘는 손실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이 3조2,000억원에 달하는 영업적자를 낸 데 이어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도 불과 1년 만에 뒤를 밟으면서 '빅3'라고 불리는 조선 대형 3사가 일제히 실적 부진의 늪에 빠지게 됐다.
이번 위기의 주범은 바로 해양플랜트다. 움직이거나 혹은 제자리에서 바다 밑 석유 등 자원을 탐사하고 개발된 광구에서는 석유·가스를 뽑아 올려 즉석에서 정제한 뒤 저장까지 할 수 있는 대형 해양 구조물 등을 일컫는다. 해양플랜트는 불과 3~4년 전만 하더라도 '조선업의 효자' '고부가가치 성장동력'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극심한 수주 가뭄을 겪는 국내 조선업계에 커다란 일감을 안겨다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막상 해양플랜트는 효자도, 고부가가치 상품도 아니었다. 조선 3사 간 치열한 경쟁으로 애초 높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었던 데다 건조 과정에서 계약 변경이나 공사 지연으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재앙으로 돌아왔다. 노사분규로 지난 2009~2012년 단 한 건의 수주도 못한 한진중공업의 한 고위관계자가 "과거에 어쩔 수 없이 수주를 못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저가 수주를 피해 약이 됐다"고 말할 정도다.
◇'일단 수주부터'…재앙의 씨앗, 출혈경쟁=19일 국제 조선·해양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한국 신규 수주량은 2007년 3,255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였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2009년 437만CGT로 8분의1 수준까지 쪼그라들었다. 2011년 1,449만CGT까지 회복했지만 이듬해인 2012년에는 다시 유럽발 위기가 불거지며 841만CGT로 급감했다. '금융위기→기업 부진→소비 침체→물동량 감소'의 악순환으로 원자재를 나르는 벌크선이나 컨테이너선 등 상선 시장이 얼어붙은 것이다. 조선업체는 상선의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해양플랜트에서 기회를 찾았다. 마침 2010년 말 이후 국제유가가 배럴당 90~110달러로 오르자 글로벌 에너지 회사들은 경쟁적으로 자원 개발에 나섰다. 세계적으로 해양플랜트를 만들 수 있는 회사는 국내 대형 3사였고 일감을 확보하기 위한 국내 조선사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대형조선사들은 협력업체 직원까지 포함해 3만~6만명이 일하는데 수주를 못 해 도크를 비울 경우 인건비 등 고정비용을 감당해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사 입장에서는 얼마를 남기느냐보다 적자만 아니라면 어떻게든 일감을 따는 게 더 중요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11년 빅3의 해양플랜트 수주액은 257억달러로 상선 수주액(249억달러)을 웃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 해양플랜트를 건조해보니 남기기는커녕 적자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게 관건이 됐다. 실제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가 발주한 부유식액화천연가스생산설비(FLNG)의 경우 대우조선이 2012년 7억7,000만달러에 수주했지만 삼성중공업은 비슷한 FLNG를 2014년 14억7,000만달러에 수주했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두 설비를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가격이 두 배가량 난다는 점에서 2012년 저가 수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설계 변경·공사 지연에 손실은 쌓이고=국내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 수주 당시 '세계 최대' '세계 최초' 같은 기록을 선전하기 바빴다. 그러나 실상은 경험 부족으로 계약을 바꾸거나 공사가 지연되기 일쑤였다. 또 해양플랜트 상부에 해당하는 엔지니어링 능력이 떨어져 미국과 유럽 등 전문 업체에 맡기다 보니 수익성은 더 나빠졌다. 기자재 국산화율도 20%에 못 미쳐 주요 기자재들은 모두 수입했다. 곳곳에 부실이 깔렸다. 더욱이 선박 인도 시점에 전체 대금의 50% 이상을 받는 '헤비테일' 방식의 결제조건은 조선사들의 금전 부담을 가중시켰다. 대우조선의 경우 2011년 수주한 반잠수식 시추선 4기에서 대규모 손실이 드러났고 삼성중공업은 2012~2013년 수주한 호주 익시스와 나이지리아 에지나 등 두 프로젝트 공사 지연이 대규모 적자로 반영될 것으로 알려졌다.
해양플랜트 부실이 여러 분기에 걸쳐 고르게 반영되지 않고 특정 시점에 몰리는 이유는 수주에서 인도까지 길게는 3년 이상 걸리는 조선업의 특징 때문으로 분석된다. 조선사는 건조 상황에 따라 매출액과 예정원가를 정해 분기 실적에 반영하는데 인도할 때는 해당 선박에 대한 원가와 이익을 남김없이 모두 반영해야 한다. 과거 헤비테일 방식의 수주가 많았던 만큼 최근 인도 시점이 가까워지며 대규모 손실도 나타난 것이다.
대형 조선 3사가 해양플랜트발 부실에 허덕이는 가운데 중소형 조선사는 무섭게 추격하는 중국, 엔저를 무기 삼아 수주경쟁력을 높인 일본과 힘겨운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주로 벌크선이나 중소형 유조선 등을 놓고 경쟁하는데 최근에는 벌크선 시황까지 악화해 형편이 더 어려워졌다. STX조선해양이나 성동조선해양·SPP조선·대한조선·대선조선 등은 은행 빚을 갚지 못해 모두 은행 소유가 됐다. 성동조선은 삼성중공업이 위탁경영을 거부하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로 갈 수 있다. 국내 조선업계가 크기를 불문하고 위기에 빠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