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무상의료정책이 도입되면 장기보험에 미치는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속 시원히 설명해보세요."
지난달 손해보험협회에서 열린 손해보험사 사장단 회의에서 한 손보사 사장이 손보협회 임원에게 던진 질문이다. 민주당이 최근 '무상의료정책' 추진에 다시금 드라이브를 걸면서 '불똥'이 다름 아닌 보험업계로 튀고 있다.
보험업계가 이처럼 무상의료정책 추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손형 민영의료보험으로 대표되는 장기보험상품 판매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손보사들의 장기보험 보유보험료 비중은 60%에 달한다. 이는 전체 매출액의 60%를 장기보험 상품이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무상의료정책 도입에 대한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정치권에서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을 앞두고 각종 의료복지공약을 발표할 경우 보험사들의 '캐시카우(Cash Cow)'인 장기보험 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오영수 보험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현재 건강보험제도에서는 본인부담금이 크기 때문에 민영보험시장이 활성화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며 "특히 보험사들 입장에서는 민영보험의 효용가치가 떨어져 잠재적인 수요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가장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보험업계에서는 해외의 사례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무상의료정책 추진의 문제점을 해외 사례에 빗대어 알리는 등 대응 논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대형 손보사의 한 관계자는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NHS)가 국가예산의 25%를 차지하면서 영국 정부의 심각한 재정적자를 키우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며 "영국도 지난 2004년 독일과 2006년 네덜란드가 의료비에서 본인부담금을 늘리는 의료개혁안을 참조해 개혁안을 만들고 있어 국내 정치권의 주장은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보험업계의 주장에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소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장기보험 상품판매비중이 너무 높은 데도 이를 개선할 방법을 찾지 않고 안주하는 보험사의 행태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반면 "금융당국이 보험사들도 다양한 금융상품을 취급할 수 있도록 허용해줘 장기보험 판매비중을 줄이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실적인 대안이 없는 현재 상황에서 '솥뚜껑 보고 놀라는' 보험사들의 현실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