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클릭, 핫이슈] 교역조건과 채산성

지난 2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 3ㆍ4분기 교역조건은 역사상 최악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교역조건이란 수출단가를 수입단가로 나눈 값으로 이 값이 높아지면 기업의 채산성이 높아지는 반면 반대의 경우는 채산성이 악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교역조건이 기업의 채산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한국의 제조업체들은 대부분 해외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ㆍ조립한 뒤 수출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반도체ㆍ철강ㆍ조선ㆍ자동차ㆍ화학 등 대부분의 기간 산업들은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일 원자재의 수입 가격이 상승하는 데 수출가격이 하락하면 어떻게 될까. 답은 너무나 명확하다. 이런 교역조건이면 어떤 기업이라도 '수익악화'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 결국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교역조건 동향은 기업실적의 척도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과거 종합주가지수의 추이와 수출단가의 동향을 살펴보면 놀랄 만큼 유사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2ㆍ4분기를 고비로 주식시장이 기나긴 침체의 늪에 빠졌던 것은 수출단가의 하락과 수입단가의 상승에서 비롯된 교역조건의 악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교역조건 통계의 발표는 알고 있던 지식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앞으로의 투자판단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은행이 발표한 교역조건 통계는 9월 데이터로 11월 주식시장의 투자 판단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낡은 것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두달 전의 통계보다는 지금 당장, 그리고 앞으로의 교역조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교역조건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게 될까. 3ㆍ4분기 교역조건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지속적으로 악화돼 기업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는 내년 또는 내후년으로 미뤄야 하는 것일까. 이런 고민을 하는 투자자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정보가 바로 CRB(Commodity Research Bureau index) 상품지수다. 반도체 가격이 한국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지는 모두 다 알 고 있으며 매일 점심시간에 발표되는 메모리용 반도체 가격의 등락에 주식시장이 출렁거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에는 반도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화학ㆍ철강ㆍ자동차ㆍ조선ㆍ비금속 광물 등 수 많은 중요 산업이 존재한다. 바로 이런 여러 중요 상품의 가격을 집계하는 것이 CRB 상품지수라고 할 수 있다(Bloomberg를 비롯한 주요 통신사 사이트에 실시간으로 제공된다). CRB 상품지수는 에너지, 귀금속, 금리, 공업제품 등 다양한 세부 지수로 구성돼 있는 데 이 중 에너지지수와 공업제품 가격지수가 한국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CRB 에너지 가격지수는 한국의 수입단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CRB 공업제품 가격지수는 수출단가의 대리변수로 볼 수 있다. 과거 한국의 수출단가와 CRB 공업제품 가격지수의 장기추세를 비교하면 두 변수가 매우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근 CRB 공업제품 가격지수는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까. 지난 2ㆍ4분기를 고비로 하락추세로 전환됐지만 지난 10월을 고비로 상승세로 돌아서고 있으며 아직 그 상승세가 중단된 징후를 발견할 수 없다. 즉 아직까지는 4ㆍ4분기 기업실적이 3ㆍ4분기보다 더 악화될 근거는 크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물론 중장기적으로 볼 때 국제 공업제품 가격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경기에 달려 있으며 최근 발표되는 경제 지표들이 악화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공업제품 가격이 상승세를 지속할 것인지의 여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랠리의 종결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 국제 공업제품 가격의 동향을 이용한다면 시장 전망의 불확실성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홍춘욱 한화투자신탁운용 투자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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