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중국 무역대금의 위안화 직접결제를 올해 내에 실시한다. 위안화 허브를 꿈꾸는 정부가 기업들의 위안화 거래를 독려하는 가운데 나온 최초 사례로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전자에 이어 다른 대기업들도 동참할지 주목된다.
24일 삼성그룹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현재 중국과의 무역대금 가운데 10억∼20억달러(약 1조1,000억∼2조2,000억원) 규모를 기존 달러 대신 위안화로 직접 결제하는 방안을 늦어도 연말까지 시행할 예정이다.
삼성그룹의 한 소식통은 "삼성전자는 위안화 직거래 비율을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라며 "그룹의 다른 계열사들도 추이를 지켜본 뒤 검토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대중국 무역규모는 연간 300억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삼성전자의 위안화 직거래는 국내 주요 대기업 가운데 최초 사례다. 정부는 기업들의 위안화 결제를 활성화해 국내 금융시장을 위안화 허브로 육성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이 '한중 위안화 표시 무역결제 확대 관련 조찬 간담회'를 열어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주 차관은 이 자리에서 주요 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들에게 위안화 무역결제 활성화에 힘을 보태줄 것을 주문했다. 이 조찬회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포스코·현대모비스·현대중공업·GS칼텍스·LG화학·SK하이닉스 등의 주요 CFO들이 모두 모였다.
기재부는 지난해 10월31일 '위안화 거래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으며 11월6일 중국 교통은행 서울지점이 위안화 청산은행으로 출범했다.
이어 지난해 12월1일 세계에서 세 번째로 국내에 개설된 원·위안화 직거래시장 거래 규모는 하루 평균 8억3,000만달러(약 52억위안)다.
아울러 대중국 위안화 투자도 본격적으로 개시돼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11월28일, 30억위안), 외환은행(11월30일, 10억위안) 등 국내 금융기관에 지난해 11월부터 위안화적격외국인기관투자가(RQFII) 및 중국 은행간채권 시장 투자한도가 부여된 상태다.
그러나 기업들이 위안화 결제에 소극적이어서 위안화 거래 활성화 조짐은 아직 미미한 형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중국 무역대금 가운데 위안화 결제 비중은 지난해 4·4분기 기준 1.7% 수준으로 좀처럼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 물건을 수입할 때 위안화 결제 비중은 그보다 더 낮은 1.0%다. 반면 달러를 통한 대금결제가 95%를 차지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내놓은 위안화 대출 상품 또한 외환은행이 지난해 말 선보인 위안화 대출 상품만 1건의 대출을 기록하는 등 호응이 낮다.
지난해 12월과 올 1월까지 2개월간 원·위안화 거래량은 총 2,212억5,200만위안(약 356억4,000만달러)이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시장조성자 은행들 간의 거래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대기업이 위안화 결제에 뛰어들면 그동안 위안화 결제를 주저하던 수출 중소기업들의 참여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일부 대기업들은 중국 자회사를 중심으로 위안화 직거래를 검토 중이며 다음달 구체적인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기업들로서는 대중 무역결제를 위안화로 할 경우 환리스크와 환전 수수료도 줄일 수 있다. 중국 측 기업과 관계를 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중국 현지법인 설립 때도 각종 신고의무 면제 등이 가능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맏형격인 삼성전자가 결제통화의 위안화 전환을 추진하면서 정부의 위안화 허브 정책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삼성전자는 무역규모도 커 위안화로 전환하면 이익도 막대할 것이기 때문에 먼저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며 "그동안 위안화 결제에 주저하던 기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소기업의 경우 무역규모가 작아 환전해도 이익이 크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위안화 전환 움직임이 기업 전반으로 확산될지는 좀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종혁기자@2juzs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