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노사평화의 시대를 열자]<상>'생산적 노사활동' 싹을 키우자

작년 513개사 노사화합 선언 '상생 밑거름'



2008년은 한국 노사관계에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핵심 공약 가운데 하나로 ‘법질서 확립’을 제시한 만큼 노사관계에서도 ‘법과 원칙’을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새 정부는 또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실용적 노사관계를 이끌겠다는 의지를 밝혀 노사상생의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합리적인 노사관계 구축으로 노사 평화의 시대를 열 것으로 예상되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노사상생의 길을 점검해본다. 지난 3일 기아자동차의 신차 ‘모하비’ 발표회장에서는 뜻밖의 인물들이 눈에 띄었다. 김상구 기아차 노조 지부장을 비롯한 20명의 노조 관계자들이 신차 발표회에 모습을 드러낸 것. 지난해까지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주도의 파업 때마다 선봉에 섰던 기아차 노조원들이 신차 출시회장에 나타난 것은 회사 창립 이래 처음이다. 기아차 노조 관계자들은 이 자리에서 “고객들이 믿고 탈 수 있는 차량을 (출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감동의 약속을 했다. 그동안 파업으로 고객의 신뢰를 저버렸던 노조가 직접 나서 파업을 자제하고 고객 서비스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재계를 비롯한 각계에서는 기아차 노조의 선언을 ‘아름다운 약속’으로 평가하면서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노사관계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싹트는 상생의 기운=노사상생의 기류는 지난해부터 산업현장 곳곳에서 감지됐다. 정유업계 GS칼텍스ㆍ바스프와 전자업계 LG필립스LCD가 일찌감치 자발적으로 임금동결에 합의했고 하이닉스반도체 노조는 3년 연속 임금인상을 사측에 일임했다. 화섬업계 강성 노조였던 코오롱 노조도 올해 임금동결안을 제시하는 동시에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했다. 김홍렬 코오롱 노조위원장은 “회사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경영목표 달성만이 우리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며 “앞으로 노조활동의 초점을 조합원 복지와 경영진과의 상생에 맞추겠다"고 밝혔다. 회사의 경쟁력과 미래라는 과제 앞에서는 항상 ‘수동적이거나 방관자적 입장’에 머물던 노조가 태도를 바꿔 ‘공동의 생존기반’으로 받아들이는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노사화합을 선언한 기업은 현대중공업과 동국제강 등 총 513개사에 달했다. 특히 민주노총의 최대 사업장이자 강경 노조로 알려진 현대자동차 노조는 지난해 임단협에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무분규 타결을 이뤄내기도 했다. 이 분위기에 힘입어 지난해 노사분규 건수(10월 기준)는 2006년 대비 20% 이상, 근로손실 일수는 60% 이상 줄었다. 특히 산업현장의 고질병이었던 불법파업은 2002년 66건에서 지난해 11건으로 눈에 띄게 감소했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지난해 우리 산업현장에서는 갈등과 반목에서 화합과 상생으로 노사관계를 획기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면서 “올해에는 노사상생의 분위기가 생산적인 노사관계로 발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사관계 주도권 둘러싼 갈등 ‘복병’=산업현장의 먹구름이 아직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노사관계의 ‘주도권’을 놓고 정부와 노동계가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크다. 민주노총은 친기업 정책을 표방한 새 정부의 방침에 반발해 일찌감치 공세적 투쟁계획을 내놓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12월26일 제22차 중앙집행위원회에서 ‘2008년 사업계획’을 논의하면서 “이명박 정부는 근본적으로 보수적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규정하고 “노동자ㆍ민중과 (새 정부와의) 대립이 격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석행 위원장은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올해 파업을 할 경우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총파업을 벌이겠다”면서 “이명박 정부에는 (참여정부에서 투옥된 노동자들의 10배에 달하는) 9,800명이 감옥에 갈 각오로 맞서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사실상 정부 길들이기 차원의 투쟁을 선언한 셈이다. 경총을 비롯한 경영계는 민주노총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새 정부의 원칙적인 대응기조가 노동계의 투쟁에 밀려 좌초될 경우 앞으로 노사관계 안정이 담보될 수 없는 만큼 올해가 매우 중요하다”고 우려했다. 이명박 정부가 ‘법과 원칙’을 지키고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실용적 노사관계를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를 어느 정도로 실현시킬지에 따라 한국 노사관계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참여정부의 노사관계 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아 노사관계에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정책을 일관되게 수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재계 관계자들도 “새 정부 초기에는 법과 원칙에 기초한 노사관계 확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대기업 노사담당 임원은 “정부가 초기부터 ‘원칙적 대응’을 해야 노동계에 잘못된 기대심리를 심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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