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11월 11일 섬유…수출 한국

‘챠르륵, 챠르륵….’ 옆집 편물기가 돌아가던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소형 섬유기계 서너 대를 집에 들여놓고 직물을 짜는 풍경은 70년대 말까지 낮선 것이 아니었다. 동네마다 섬유를 가내공업으로 삼는 집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었다. 기계는 쉴 새 없이 돌아갔다. 공장에서도 철야근무로 지샜다. 해외언론이 한국의 경제발전을 다룰 때 단골처럼 애용한 사진은 불이 환하게 켜진 한 밤중의 섬유공장이었다. 밤낮없는 노동의 결과인 생산품은 배에 실렸다. 가내수공업 수준에서 시작한 섬유는 1987년11월10일 대기록을 세운다. 연간 수출 100억달러 돌파. 단일업종 최초다. 섬유로 시작된 수출 한국의 탄력은 멈추지 않았다. 반도체(94년), 가전(95년), 자동차(96년), 컴퓨터(99년), 조선ㆍ휴대폰(02년), 석유화학(03년), 철강(04년)업종이 줄줄이 같은 기록을 쌓는다. 섬유의 신화는 현재진행형이다. 황금알을 낳는 고부가치산업으로의 재탄생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라크 아르빌에 파견된 한국군 자이툰부대 장병들이 쓰고 있는 방탄모의 재질도 섬유다. 최첨단 ‘피라미드’ 소재로 제작된 국산 방탄모는 세계 최고제품이다. 정보기술(IT) 강국 한국을 이끌어 준 바탕인 초고속통신망도 광섬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소재로서 섬유가 갖는 영역은 무한하다. 누가 사양산업이라고 하는가. 섬유의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장대하다. 세월이 흘러 소년은 장년이 되고, 들판이 아파트 숲으로 바뀌어도 정신은 변하지 않는다. 수출최전방에서 밤새 움직이던 옆집 편물기의 기계음이 교향악의 선율보다 더 아름답고 강렬하게 재생된다. ‘챠르륵, 차르륵….’ /권홍우ㆍ경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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